검찰이 잇따라 터지는 내부 악재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공직비리수사처(공수처) 등 민감한 현안 때문에 극도로 조직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대형 사건마다 고위 간부들이 `금품 스캔들', `청탁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터지면서 재야 법조 시절 검찰 개혁을 강조했던 천정배 법무장관이 검찰 고위직 인사를 일찌감치 단행해 조직을 재정비하는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벌 앞에서 약해지는 검찰' 스캔들 연발 검찰 전ㆍ현직 고위 간부들의 금품 스캔들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주미대사의 불법자금 로비 의혹이 담긴 안기부 도청테이프(X파일)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불거져나왔다. X파일에는 현직 검사장 2명을 비롯해 전직 법무부 장관과 서울지검장, 서울고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차장검사 등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동안 연루 의혹을 받은 검찰 전ㆍ현직 고위 간부들은 실명으로 보도되지 않았으나 검찰 안팎과 정치권에서는 소문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경찰이 수사를 해야한다며 공개적으로 검찰을 비꼬기도 했다. 안기부 도청 사건이 확대되면서 검사들의 X파일 `금품 스캔들'은 잠시 소강상태였으나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이들의 실명을 전격 공개하는 바람에 다시 물 위로 급부상했다. 지난달 중순 회삿돈 1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 사건의 첫 수사팀도 `재벌 봐주기' 의혹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상그룹 임 명예회장 사건 수사팀에 대한 감찰 여부가 더욱 관심을 끌었던 까닭은 X파일과 관련된 삼성그룹과 두 회사 오너 일가가 사돈 관계이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17일 감찰위원회를 열고 감찰 착수 여부를 논의한 끝에 감찰 사안은 아니지만 향후 수사팀 인사 때 수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수사팀과 지휘 계통에 있었던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당시 인천지검장)과 김명진 서울고검 형사부장(당시 인천지검 1차장) 등은 향후 인사에서 어느 정도 불이익을 받는 게 불가피하게 됐다. ◇브로커 수첩에까지 거명된 검찰 검찰은 그동안 브로커의 청탁을 받고 부당하게 이권에 개입한 경찰관들을 구속 수사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간접적으로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검찰 간부들의 이름이 잇따라 브로커의 `관리 수첩'에 기재된 사실이 드러나 안팎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 대검 감찰부는 최근 외국인 노동자 송출 비리와 관련, 경찰에 구속된 브로커 홍모씨로부터 현직 부장검사 2명이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감찰에 착수했다. 홍씨는 수사 무마, 청탁 대가로 검사들 뿐 아니라 경찰 간부, 언론사 기자들에게 수백만~수천만원의 떡값을 건네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A검사는 "20년 전에 알게돼 친하게 지냈지만 최근 1년 사이에는 만나지도 않았고, 금품은 일절 받지 않았다.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조직에 누가 돼 가슴 아프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올 4월에는 수사관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체 회장(미국 도피 중)에 대한 내사 무마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지검장이 좌천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기강확립' 인사 후폭풍 이어질까 대상그룹 수사팀에 대한 감찰위원회 결론이 나온 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에게 송구스럽다는 말과 함께 기강 확립에 나서줄 것을 검찰 간부들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잇따라 고위 간부들이 연루된 스캔들이 터지면서 `인사 후폭풍'이 몰아닥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일찌감치 나오고 있다. 당장 사표를 낸 김상희 법무부 차관의 후속 인사를 하게되면 일부 검사장급 인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 차관과 함께 X파일에 실명이 거론된 다른 현직 검사장도 사표를 낼 경우 인사 범위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올 4월 단행된 법무ㆍ검찰 고위직 승진 및 전보 인사가 조직 안정에 무게를 두고 평이한 수준에서 이뤄졌던 점도 기강확립을 위한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잇따라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착잡할 뿐이다. 최대한 빨리 조직을 추스르는 데 집중할 뿐 아직 인사 얘기를 꺼낼 단계는 아니다"며 파장확산을 경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