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는 삭막한 도시다.


온 도시가 시멘트로 뒤덮여 있다고 할 만큼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 차 있다.


시내에서 한적한 녹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넘쳐나는 거리 인파를 헤집고 나가자면 짜증부터 난다.


40도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힌다.


이런 상하이를 여름철 관광지로 선택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그런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있을까.


'있다. '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고 떠나면 상하이는 분명 여름 관광에 매력을 갖고 있는 도시다.


시멘트 건물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상하이 비밀'을 한겹 한겹 벗기는 즐거움은 한여름 땀을 보상받기에 충분하다.


근대 중국역사의 현장이 곳곳에 숨어있고,또 발전하는 중국경제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는 시내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황푸(黃浦)강을 사이로 푸둥(浦東)과 푸시(浦西)로 나뉜다.


황푸의 동쪽은 푸둥이요,서쪽은 푸시다.


황푸강은 상하이의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서쪽 와이탄(外灘)에 즐비한 고색창연한 유럽스타일의 건물은 19세기 말 상하이를 보여준다.


당시 황푸강은 아픈 역사를 머금고 흘렀으리라.


중국이 제국주의에 굴복,조차지가 설립되면서 외국인들은 와이탄공원 입구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華人與狗不得入內)라는 팻말을 꽂아 놓았다.


바로 그 자리에는 지금 지멘스 삼성 등 외국기업 광고판이 들어서 있다.


그 어떤 패러디가 이보다 더 풍자적일 수 있을까?


와이탄이 19세기의 땅이라면 강건너 푸둥은 21세기 중국의 발전을 대표하는 곳이다.


아시아 최고(468m) 건축물인 동방명주(東方明珠)가 우람하게 버티고 서있으며,그 옆에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들어서 있다.


중국인들이 동방의 '맨해튼'이라고 부르는 루자줴이(六家嘴) 금융가.


HSBC 씨티은행 등 세계적인 은행과 상하이증권거래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지개벽이야!'라고 감탄했다던가….


푸둥 쪽 강변 호프집 뢰벤브로이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황푸강을 바라본다.


19세기 질곡의 중국역사와 21세기 발전을 담은 역사의 서사시가 거기에 있다.


근대 중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은 이 밖에도 많다.


시내 쉬자후이(徐家匯)의 신천지(新天地)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제1회 공산당전당대회 유적'(一大會址)은 중국공산당이 탄생한 곳이다.


지난 1921년 마오쩌둥 장궈타오(張國燾) 등 혁명가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당대회를 열었다.


평생을 혁명과 투쟁으로 살아온 마오쩌둥은 '공산당이 없었다면 새로운 중국은 없다'(沒有共産黨,沒有新中國)라고 했다.


바로 그 전당대회 옆에 조성된 카페거리인 신천지에 공산당은 없어 보인다.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노라면 공산당 '성지'인 상하이가 자본주의 사회로 줄달음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상하이는 그렇게 과거와 미래가 뒤엉켜 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관광객이라면 루쉰(魯迅)공원(옛 홍코우공원)을 빼놓지 말자.


공원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루쉰기념관은 그의 숨결이 아직 살아 있는 곳이다.


아Q정전(阿Q正傳),광인일기(狂人日記),방황(彷徨)….


루쉰의 소설 원고는 빛바랜 채 전시돼 있지만 중국에 던졌던 그의 큰 울림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그는 봉건의 악습에 젖어 있는 민중들의 몽매를 두들겨 팼다.


그의 붓(筆)은 독재에 빠져 들고 있는 군벌세력들을 겨냥했고,또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졌던 '가짜혁명'을 공격했다.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


루쉰은 '물에 빠진 개가 다시 살아나와 사람을 무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두들겨 패라'고 일갈했다.


불의의 세력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라는 외침이었다.


루쉰기념관에는 지금도 그의 울림이 메아리치고 있다.


상하이 관광의 또 다른 맛은 쇼핑이다.


시내 샹양시장은 세계 명품 브랜드가 모두 몰려 있는 곳이다.


롤렉스시계,구치핸드백,캘러웨이골프세트….


물론 가짜다.


살 때 조심해야 한다.


주인이 부르는 값의 3분의 1부터 흥정을 시작하는 게 좋다.


골동품을 사려면 예원이 좋다.


그곳에서도 역시 가격 흥정이 필수다.


양자강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상하이는 물의 고향(水鄕)이기도 하다.


상하이에서 1시간 정도 근교로 나가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물길을 만날 수 있다.


저우좡(周庄) 우전(烏鎭)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들은 '동양의 베니스'라고 앞다퉈 우겨대고 있다.


상하이 여행의 끝은 발(足)안마다.


피곤한 다리를 안마사에게 맡겨보자.


그들의 손놀림에서 나른했던 몸은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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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국충정 되새기며 독립성지 산책


상하이는 우리나라 독립의 '성지'이기도 하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렸던 유적이 상하이와 주변 지역에 퍼져 있다.


우리 자녀들의 역사교육 현장으로 손색이 없다.


상하이 시내 카페골목인 신천지(新天地) 옆에 있는 임시정부청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조국 광복을 위해 상하이 지역을 누비고 다녔던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노력으로 관리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루쉰공원 내에 마련된 윤봉길 의사 기념관(梅亭)은 일본군 수뇌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졌던 바로 그 현장에 건립됐다.


'남아가 한 번 집을 나가 뜻을 이루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으니'라는 그의 서필과 한 손에 수류탄,한 손에 가입선언을 든 윤 의사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그곳에는 특히 의거 당일 김구 선생과 맞바꾸었다는 윤 의사의 시계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 달려 도착하는 자싱(嘉興)의 하이엔(海鹽)에도 김구 선생의 유적이 살아 있다.


이곳은 김구 선생이 윤봉길의사 의거 이후 몸을 피해 2년간 거처하던 곳.


그는 당시 지인의 도움으로 이곳에 머물며 조국을 잃은 슬픔을 달래면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다.


최근 상하이 총영사관의 노력으로 기념관이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