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1일 이른바 `딸들의 반란' 사건에서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향후 종친회 운영 및 재산처분 방식에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당장 가시적인 변화가 생기진 않겠지만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종중의 일원임을 명백히 함으로써 출가하면 시댁식구라는 기존 관념을 깨고 양성평등의 가치를 좀더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출가외인'은 구시대적 개념 = 이날 판결은 올 3월 호주제 폐지법안의 통과와 맞물려 남성과 대등한 주체로서 여성의 법적 지위를 다시 한 번 명확히 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성문법상 종중의 개념을 규정한 조항이 없지만 대법원 판례는 "종중이란 공동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 친목 등을 위해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 남자'를 종원으로 구성된다"며 여성을 철저히 배제했다. 이 판례는 종중과 관계에서 여성의 지위를 규정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출가한 여성은 더 이상 종중의 일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여성의 시댁종속을 낳는 기제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즉, 결혼이란 대등한 두 당사자의 법적 결합임에도 결혼한 여성은 친정과 시댁의 어느 종중에도 주체적인 종원으로 참여할 수 없어 종중 문제에서 애매한 정체성을 갖게 되는 모순을 낳은 것이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황덕남 변호사는 "종전 판례는 여성이 결혼하면 시댁의 피붙이가 돼야 한다는 전근대적 관념을 고착시킨 측면이 있다. 이번 판결로 일상생활에서 눈에 띄게 큰 변화는 없겠지만 양성평등의 이념을 확산시키고 대등한 관계로서 부부 개념을 정립시킨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종중 운영 일대변화 불가피 = 그동안 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종중의 운영방식에 앞으로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판결 선고 순간부터 모든 성인 여성이 자신이 속한 종중의 회원자격을 얻게 됨으로써 종중이 총회나 대표자 선임, 재산처분 등 법률행위를 할 경우 남성과 똑같이 여성도 종중회원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보도자료에서 "이번 판결에 따라 적법한 종중 운영을 위해 성인 여성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고 밝힌 것처럼 종중 입장에서는 그동안 관심권 밖이었던 여성 회원의 주소지 확보가 당장 현안으로 대두된 상태다. 종중의 명부라고 할 수 있는 족보 문제의 경우 일부 종중은 현재 여성의 이름까지 족보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상당수 종중이 남성 위주로 작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족보 손질도 이뤄져야 한다. 또 앞으로 여성이 종중의 대표로 되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당대의 여성이 후손들에 의해 시조나 중시조로 추앙받는 경우도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계와 반대입장에서 여성의 종중회원 인정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온 유림은 강력 반발할 것으로 예상돼 이번 판결은 향후 적잖은 사회적 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또 대법원이 밝힌 것처럼 종중의 주된 목적이 친목도모 외에 분묘수호와 제사에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역할은 남성들이 대부분 수행해 왔다는 점에 비춰 종중의 일원으로서 여성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황덕남 변호사는 "이번 판례가 양성평등의 측면에서 여성의 지위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성들도 제례나 분묘수호 등 종중으로서의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부담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대법, 법적 분쟁 사실상 차단 = 이번 판결은 종중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배제됐거나 상대적 불이익을 당한 여성들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됐으므로 앞으로 유사소송이 많지 않겠느냐는 관측과 달리 실제 법적 분쟁이 벌어질 소지는 적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지금까지 규율된 종중제도의 법률관계에 대한 근간을 바꾸는 것인 만큼 판례의 소급효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변경된 판례를 소급 적용한다면 종전 수많은 법률관계의 효력을 일시에 부정하고 법적 안정성과 신의성실 원칙에도 반한다. 따라서 변경된 판례는 판결 선고 이후 새로이 성립되는 법률관계에만 적용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이날 판결 선고 전에 성년 남자들만을 종원으로 해서 종중이 행한 대표자 선임결의, 종중재산의 처분결의 등 법률행위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 법률행위에 대해서는 앞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대법원이 이번 심리의 대상이 된 사건에 대해 소급효력을 적용, 2심 판결 당시 이들이 종중 회원임을 인정했음에도 당시 해당 종중의 재산처분 결의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다만 앞으로 종중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부 종중이 이번 판례를 부인하면서 여성을 배제한 채 총회를 개최하거나 대표자 선임 및 재산처분 등에 대한 결의를 했을 경우 법적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