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인 1993∼1998년 2월 특수도청팀을 운영해 불법 도청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국정원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조선일보는 21일 안기부가 YS 시절 정권안보 차원에서 특수도청팀인 `미림'을 가동해 정계.재계.언론계 유력 인사들의 사석 대화까지 도청했다고 전하면서 도청내 용이 `하나라도 나오면 세상이 뒤집힐' 정도라는 관계자의 말을 소개했다. 도청 내용 중에는 1997년 대선 자금과 관련된 것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비록 법적시효는 지난 것이라고는 하지만 진상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회적 파장이 적지않을 전망이다. 국정원은 이날 즉각 "잘못된 과거를 씻어 버린다는 자세로 불법 도청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여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국민에게 밝힐 것"이라면서 "조사 결과에 따라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안기부 `미림'팀에 제기된 의혹 = 미림이라는 특수도청팀은 서기관급 팀장 1명과 사무관 1명, 6급 2명으로 구성돼 이른 바 망원(일반인 정보협조자)들을 활용, 정계.재계.언론계 핵심 인사들이 찾는 술집, 밥집 등을 미리 확인한 뒤 `현장도청'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정을 잘 안다는 한 인사는 "미림팀의 도청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청와대 실세나 거물 정치인, 재벌기업인 등의 단골 술집과 한정식 집 등에 망원을 심어 예약정보를 입수한 뒤 미리 도청기를 설치하고 옆방에서 엿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특히 미림팀이 전화 또는 현장 도청한 테이프 중에는 1997년 대선자금 지원 관련 내용 등이 녹취된 것으로 MBC가 확보한 테이프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련 인사는 "미림의 존재 자체는 안기부 내에서도 극히 제한적인 사람만 아는 최고의 보안 사항이었다"면서 "미림에서 생산하는 도청녹취록과 보고용 요약 문건인 `미림보고서'는 국내정보 담당 차장과 안기부장 정도만 접했다"고 전했다. 미림팀의 주목적은 주로 정권 실세 주변과 야당 거물인사 주변 등의 동향 파악을 통한 정권안보였으며 한 관련 인사는 "YS 정부 시절 전격 경질되거나 갑자기 사정 당국의 그물망에 걸려 낙마한 인사 등은 대부분 미림팀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림의 도청 테이프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퇴직한 한 안기부 직원에 의해 외부로 유출됐다가 1년여 뒤인 1999년 중반 무렵 안기부 감찰실에 압수됐으며 당시 압수된 테이프는 최소한 8천개로 추산되고, 미림팀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해체됐다. 안기부의 도.감청은 정식 조직계선상에 있는 조직과 특수 비밀조직인 미림에 의해 두 갈래로 이뤄졌으며 미림팀의 존재를 알고 있고 보고서를 받아본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과거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 사례 =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은 이후 일부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고 그냥 묻혀버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대선 등 선거를 전후해 크게 불거져 나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안기부 1차장을 지냈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2002년 9월 국회 정무위의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감에서 국정원의 최고위 간부만이 볼 수 있다는 자료라면서 국정원의 `도청내용'을 공개했다. 내용은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사건과 관련, 구속수감됐던 한화 김연배 부회장과 당시 독일에 체류 중이던 김승연 회장간에 2002년 5월께 국제전화로 오고간 대화를 녹취한 것으로 정.관계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로비계획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감장에서 공개된 정 의원의 이 자료는 터무니 없는 정치공세로 평가절하됐지만 3년 뒤인 지난 2월 대검 중수부의 관련 수사를 통해 부분적으로 사실임이 입증되면서 뒤늦게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정 의원은 이어 그 해 10월에는 역시 국정원 도청자료를 인용,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이 이귀남 당시 대검 정보기획관에게 전화를 걸어 현대상선의 대북 4억달러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계좌추적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특히 "국정원의 도청 내역은 국정원 내에서도 원장을 포함해 3∼4명의 핵심인사들에게만 전달되는 것"이라면서 "국정원은 청와대, 여당을 비롯해 정부 고위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도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의 이 같은 주장은 `미림'팀의 활동과도 일부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돼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또 그 해 12월에는 국정원이 야당 의원들을 도청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정치사찰과 도청이나 일삼는 국정원을 폐지할 것"을 주장했고 도청당한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의원 19명은 신 건 당시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미림'팀의 존재시기와 맡물리는 1998년엔 당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김영환.김성곤 의원(국민회의)이 그 해 10월 "김영삼 정권 하의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안기부, 검.경찰, 기무사 등 공안기관에 의한 개인에 대한 통신감청이 매년 배 이상 급증하였을 뿐아니라 통신 정보제공 또한 매년 6만건 이상 늘어나 인권침해가 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특히 "전화감청 건수가 95년 1천794건에서 96년에는 2천443건, 97년에는 6천2건 등으로 매년 크게 늘었다"고 지적하고 "특히 지난 해의 경우 전년에 비해 246%가 늘었다"고 질타했다. 김형오 의원(한나라당)은 당시 "권력기관의 48시간 불법감청으로 국민의 사생활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ci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