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의 거취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희생양'을 요구하는 들끓는 여론과 이제 막 제 궤도에 오른 국방개혁의 연속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권진호(權鎭鎬)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 "정부로서는 아주 심한 딜레마"라는 말로 노 대통령의 심중을 전했다. 노 대통령의 고민은 한마디로 윤 장관의 바통을 이을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윤 장관만큼 대통령의 뜻을 잘 알고 국방개혁문제에 정통한 적임자도 없다"며 "결국 사람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완기(金完基) 청와대 인사수석도 브리핑에서 "윤 장관이 지금 하차할 경우 누구에게 국방개혁의 대임을 맡기고, 언제쯤 성과가 나오겠느냐는 점을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윤 장관 거취문제에 대해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현 시점에서 국방장관을 교체할 경우 국방개혁 일정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게 김 수석의 설명이다. 이처럼 윤 장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뢰는 매우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장관이 지난해 7월 국방장관으로 입각한 이후, 참여정부 들어 신설한 청와대 국방보좌관 자리를 공석으로 두다 아예 없애버린 것도 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뢰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윤 장관 또한 노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해군 출신이 지닌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잡음 없이 군 조직을 이끌면서 국방개혁의 큰 줄기인 군구조 개편과 획득제도 및 군 사법체계 개선 작업을 제궤도에 올려놓았다는 데 청와대내 이견이 없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가 윤 장관의 유임 쪽에 무게를 실은 가운데 여론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완기 인사수석이 공개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노 대통령의 고민을 밝히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많다. 실제 청와대 내부 기류도 유임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제 겨우 국방개혁의 방향을 잡았는데 장관을 교체하면 또다시 반년 이상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며 "군에 사고가 날 때마다 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는 후진적 행태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미국만 해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이라크 포로학대 등 갖은 사건사고 속에서 자리를 지키지 않느냐"면서 "이제 우리도 국민적 감정보다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중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여론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낙후된 병영여건과 신세대 의식문제 등 구조적, 환경적 요인이 맞물려서 빚어진 이번 총기사고의 책임을 장관 한 사람에게 물을 수 있느냐 하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윤 장관을 유임시키자니 청와대로선 당장 여론이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윤 장관 거취에 대해 "유임이냐, 교체냐 결론이 난 상황이 아니다"며 "지금은 전혀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의 고민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핵심 관계자는 "국방부 재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고, 근본적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며 "사고수습이 이뤄질 때까지 아무런 인사조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