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철도청(현 철도공사)이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전에 철도청장과 은행장, 국가정보원 간부가 만났던 사실이 확인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11일 구속된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당시 철도청장)은 작년 7월 말께 왕영용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 등과 함께 우리은행 임원들을 만나 유전사업과 관련해 신속한 대출을 부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은 작년 7월22일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이 신임 인사를 하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왔을 때 시내 음식점에서 국정원 간부 3명과 함께 식사를 한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새롭게 드러났다. 김 전 차관의 영장에는 왕 본부장 등과 함께 은행 임원들에게 대출을 부탁했다고만 돼 있어, 이날 모임이 대출 과정의 청탁이나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황 행장이 신임 인사차 대전에 내려가 철도청장이었던 김 전 차관을 만났다. 주거래처여서 의례적으로 인사만 하는 자리였을 뿐 대출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을 출입하던 국정원 간부가 대전으로 옮겨 근무하고 있었는데 황 행장이 대전에 갈 일이 있으니 동석하자고 연락했다. 철도청의 대출 요청은 7월28일에 처음 있었다"고 해명했다. 우리은행은 "황 행장이 대출 보고를 받은 것은 8월쯤이고 철도청 대출건은 액수가 적어 대출심사역 협의체에서 결정된 것이다. 처음 2천400만달러 대출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신협의회 임원회의에도 상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측 주장대로라면 황 행장이 철도청을 담당하는 개인적 친분 관계의 국정원 간부를 겸사겸사 불러내 김 전 차관과 식사를 한 모양새를 갖췄다. 그러나 실제 공식적인 대출 요청이 7월28일에 있었다고 해도 당시 철도청은 유전개발 사업을 밀어붙이던 상황이라, 황 행장과 김 전 차관이 식사를 하기 전 다른 경로를 통해 대출 청탁 등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검찰 주변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우리은행 대출관련의 결재 라인 전반에 걸쳐 조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출 담당 실무자들을 조사했으나 내부 규정을 어긴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무선에서 절차상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대출 승인 전체 과정과 최종 결재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해 조사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또 검찰은 철도청의 유전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출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은행장과 철도청장, 국정원 간부가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만큼 회동 배경을 정밀 조사할 방침이다. 김 전 차관이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유전개발 사업을 도와달라고 건의하고, 청와대 파견 건설교통부 행정관에게 유전 사업 추진 현황을 보고하는 등 정부 여러 기관이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점에 비춰 모종의 의도를 갖고 모임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이 부분을 규명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철도공사의 유전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한 차례 제출한 사실과 이번 모임의 상관관계 여부도 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단서나 근거가 없다. 대출 과정을 조사해서 관련 부분이 나오면 조사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해 이날 모임의 배경과 오고 간 이야기 등에 대한 조사 가능성을 암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