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재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양윤재 서울시 행정제2부시장을 수뢰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김일주 전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을 구속하면서 16억여원에 달하는 `베팅' 액수의 실체가 궁금해지고 있다. 김씨는 이 시장을 면담토록 해주는 대가로 업자에게 금품을 요구했다지만 김씨와 이 시장은 단순히 같은 대학을 졸업했고 한나라당 당직을 맡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큰 공통점이 없어 이 정도 인적관계로는 거액의 로비자금 전달 배경을 쉽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계천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핵심 권한이 있는 양 부시장에게는 2억원이 건네진 반면 이 시장에게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지 않는 김씨에게 거액이 제공된 데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씨는 1996년 통합 민주당 이기택 총재 밑에서 성남 중원 지구당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1997년 한나라당으로 옮겼을 때에는 이회창 총재 사회담당교육특보로 일해 이 시장과 `계보'가 다르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전언이다. 김씨가 이처럼 정치권의 핵심 역할을 맡지 않은 데다 이 시장과 친분관계를 돈독히 할 만한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도 부동산 개발업자 K씨로부터 8개월 동안 14억을 받은 것은 제3의 인물이 모종의 역할을 한 덕택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게 하고 있다. 김씨가 직접 이 시장과 두터운 친분이 없었음에도 오랜 기간 거액의 로비자금이 업자로부터 건네진 게 사실이라면 김씨와 이 시장을 연결해주는 실세 로비스트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양윤재 행정제2부시장이 부동산개발업자 K씨에게 요구했다는 60억원의 성격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양 부시장이 `나는 벤처 사업가이지 행정가가 아니다'라며 거액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 양 부시장이 실제 수령한 2억여원 외에 추가 범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양 부시장과 김씨에게 모두 16억여원이 건네진 시점이 2003년 말부터 지난해 총선 직전인 점에 비춰 로비자금이 17대 총선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주변에서는 길씨가 1987년 유진관광호텔 부지 사건에 연루돼 국외로 나갔다가 들어와 청계천 재개발 사업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인허가 과정에 차질을 빚자 로비자금 액수를 실제 사용한 금액보다 훨씬 부풀렸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시장측에서는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각종 의혹을 전면 부인한 채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시장측 관계자는 10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방송사 중견 언론인의 소개로 부동산개발업자 K씨를 비서관들이 동석한 가운데 만난 적은 있으나 김씨를 통해서는 K씨를 접촉한 사례가 전혀 없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또 그는 "16억원 로비사건은 제2의 `김대업사건'으로 확신한다.아무런 증거가 없다.오로지 K씨의 진술만 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과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씨의 아들 정연씨의 군면제와 관련해 병무브로커 전력을 가진 김대업씨가 대선을 앞두고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폭로해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이시장측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K씨가 김씨에게 14억원을 실제로 제공했는지와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이시장과 김씨를 연결하는 제3의 로비스트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