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미사일의 미국 도달 능력은 아직 의문스럽지만, 북한과 미국의 `말의 핵미사일'은 태평양 상공을 날아 상대편에 꽂히고 있다. 최근 북한이 미국에 대고 자신들이 핵무기를 가졌다며 위협하자, 미국은 실제 그렇다면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상 `소극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북한이 제외될 것임을 잇따라 분명히 정면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소극적 안전보장이란 핵무기 비보유국에 대해선 핵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핵보유국의 보장을 말한다. 북한과 중국이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교부 부상의 방중을 계기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등을 놓고 밀도있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ㆍ미간 이같은 `강대 강' 입장은 북핵 문제의 중대 분수령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고위관계자들의 잇따른 대북 경고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 선언에서 더 나아가 핵무기 실험, 혹은 북한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의 전언을 통해 대미 협상 의제에 올리겠다고 위협한 `핵물질의 해외 이관' 감행할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경고인 동시에 북ㆍ중간 물밑 대화의 결실을 압박하는 환경 조성 의미도 읽힌다. ◆태도 경화 = 미국은 최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잇따라 직접 나서 북한에 대해 핵무기 보유를 실증하겠다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지 말라고 분명한 표현으로 경고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군 병사들과 대화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관한 질문에 "한국과 동맹관계인 미국이나 다른 나라도 핵능력을 갖고 있다"며 "이 사실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능력을 사용하겠다는 비합리적 행태를 단념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북한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지 않을 만큼은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력 경고했다. 1주일 뒤 리투아니아를 방문한 라이스 장관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정말 그 상태(핵보유)가 됐다 해도, 미국이 북한 핵무기에 대해 상당한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북한이 잘 알 것"이라며 "다시 분명히 말해두지만, 북한의 (핵)위협과 시도가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일지라도, 매우 강력한 억지력의 맥락 속에서 볼 필요도 있다"고 역설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실증 노력이 대미 협상용 시선 끌기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억지력의 대상이 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두 장관의 잘 조율된 이 같은 발언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어 핵무기고 증강과 핵물질 이전 가능성을 흘리는 등 다단계로 위기감을 높이며 미국을 움직여 보려는 데 대한 강력한 거부인 셈이다. 또 시기상, 강석주 제1부상이 최근 방중에서 중국 고위관계자들에게 핵 실험에 관해 언급하는 등 핵실험 가능성을 흘린 데 대한 경고로도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지적하며 이를 단념시킬 것을 중국측에 긴급 요청했다는 22일자(워싱턴 시간) 월 스트리트 저널 보도와 관련, AP통신은 북한의 "최근의 도발적인 언사"들에 따른 미국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 것이며, 이 메시지에 핵실험에 대한 직접적인 시사는 없다고 다소 다르게 보도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두 장관의 대북 공개 경고와 맥이 닿는 것이며, 점차 수위를 높여가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장관의 발언에 대해 한국 정부의 한 고위 외교관계자는 23일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이 그동안 해온 말은 아니다"며 그 이례성에 주목했다. 이들 발언이 `소극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북한을 제외할 수 있다는 경고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북한이 법적으론 현재 핵보유국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 북한의 핵무기 보유 주장이나 입증 시도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대응 차원에선 그런 의미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북한이 핵실험 등을 통해 스스로 핵보유 `물증'을 내놓을 경우, 법적으로도 소극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에서 두 장관의 경고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북한의 안보를 더 보장해주는 게 아니다"는 미국의 기존입장을 더 직설적으로 재확인한 셈이다. 라이스 장관은 13일 월 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에선 `대북 군사 옵션이 없다는 게 상식'이라는 질문에 "부시 대통령은 언제나 옵션을 열어 두고 있다"며 다만 "외교 옵션이 더 나은 옵션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 전망 = 라이스 장관의 월 스트리트 저널 인터뷰는 더욱 경화된 미국의 대북 자세 뿐 아니라 그 배경과 앞으로 미국의 행보 등에 대해 여러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시한설과 더불어 당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엔 안보리 회부 문제와 관련, 라이스 장관은 그 "가능성과 권리"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서도 이 인터뷰에선 여건에 따라 그에 집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란은 철저한 고립(total isolation) 상태에선 운영될 수 없는 나라이므로 안보리에 더 취약하지만, 북한은 완전 고립 속에서도 운영될 수 있는 나라"라고 두 나라에 대한 안보리 효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상 안보리 회부는 북한이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북한은 미국이 성급하게 안보리 회부를 밀어붙이다 중국 등과 마찰을 빚어 대북 전선이 붕괴하는 시나리오를 기대할지도 모른다"는 한 외교 소식통의 분석에 라이스 장관의 설명을 비춰보면, 미국이 여건 성숙 때까지는 안보리 회부를 실제 강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신 라이스 장관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북한 주변 4국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의도했든 아니든, 중국과 소련이 과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도운 것은 사실"이라거나 "한국 대통령이 독일 방문 때 핵문제가 한국의 대북 경제협력을 더 발전시키는 데 장애물이라고 말했으며, 북한이 원하는 대일 관계정상화도 핵문제가 있는 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 주변 4강국의 대북 압박 책임을 강조했다. 미국은 이라크전 때부터 안보리에서 거부권이 행사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뜻맞는(like-minded) 나라들로 `연합(coalition)'을 만들어 미국의 뜻을 관철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확산방지구상(PSI)도 그 일환이다. 시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라이스 장관은 이란에 대해선 "아마 올 여름 상황을 평가"하겠다고 사실상 적시했으나 북한에 대해선 "시한 설정이 도움이 안된다"며 "외교가 힘을 소진했다고 여겨지는 시점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이스 장관은 그 시점에 대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북핵 문제에 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신호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경하되 긴박하지 않은 미국의 이 같은 입장과 관련, 라이스 장관은 "북한이 미국의 억지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한이 완전 고립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핵무기를 보유해봐야 (이 억지력 때문에)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에번스 리비어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브루킹스 연구소 강연에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관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도 흥미롭다. 그는 "최소한 현 시점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에 도달할 능력은 없으나, 북한 주변 모든 나라들엔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취지는 북핵 문제가 북미 양자가 아니라 다자문제라고 강조하는 것이었으나, 북한의 핵미사일이 아직은 미국에 대한 직접 위협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 북한 핵의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핵무기나 핵물질의 테러범 판매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라이스 장관은 PSI 등의 대책을 거론한 뒤 "그러나 앞으로도 미국이 계속 테러리즘 위협 아래 놓일 수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중동의 기본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핵 시장의 국가 단위 공급자나 수요자와 달리 통제가 어려운 비(非) 국가 수요자를 근절하도록 중동 정세를 바꾸는 게 미국 안보에 근본 대책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라이스 장관은 북한 핵문제가 부시 2기 행정부의 최대 시험대냐는 질문에 "중동이며, 중동의 안정되고 민주화된 발전"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이 6자회담 테이블에 나오기 전까지는 미국은 북한의 어떤 유인용 도발책에도 추가 양보를 위한 미동도 하지 않고 주변 4국에 관리책임을 맡긴 채 자신들에 대한 핵테러 위협의 근원인 중동 문제 해결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