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은 교리 해석에 있어 한결같이 보수적인 인물로 구성돼 있다. 115명 중 단 2명을 빼놓고는 모두가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직접 추기경 서품을 받은 이들은 애당초 진보파 인물이 발 붙일 자리가 없는 바티칸의 주교 선출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진보적 견해를 담은 '교황의 권력'이란 저서를 냈다가 교황청 교리부와 충돌을 빚은 끝에 사제직을 떠난 호주의 폴 콜린스에 따르면 추기경 후보들은 "바티칸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면에서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이끌고 나아갈 사제를 뽑는 과정은 각국에 파견돼 있는 교황청 대사 `눈치오'의 손에 달려 있으며 이들은 거의가 매우 보수적인 인물들이다. 새 사제를 지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면 교황청 대사는 천거된 후보를 아는 사람들에게 수십가지의 질문, 때로는 아주 내밀한 사항까지 캐묻는 극비 설문조사를 해서 자료를 수집하는데, 매우 제한된 보수적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후보로 천거되기도 어려운 일이다. 설문지를 받은 주변 인물들은 "지옥에 떨어질 죄의 고통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다고 서약한 뒤 후보자의 "유전적 질병 증상"에서부터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교황청의 입장에 대한 견해, 성윤리와 사제의 금욕에 대한 견해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문에 대답하게 된다. 설문에는 후보자가 보수성의 척도인 기다란 검은 카속(성직자의 평상복)을 입는지 등 온갖 시시콜콜한 내용들이 들어 있어 콜린스의 말에 따르면 이런 과정 자체가 "범용(凡庸)을 낳는다"는 것. 진보파 인사들은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한 1960년대 바티칸 2차 공의회 이후 바티칸이 교리에 순종하는 사제단을 배치하는 반격을 주도해 왔다고 보고 있다. 그 첫번째 시범은 공의회 기간과 그 후에도 실험정신과 불복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네덜란드.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신도들의 대대적인 항의를 무시하고 네덜란드내 3개 교구에 강력한 정통파 주교들을 지명함으로써 `질서 회복'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교황청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신앙이 회복되기는 커녕 오히려 신도들이 대거 이탈하고 사제 지원자들이 고갈되는 사태가 빚어졌다고 사제직에서 물러나 결혼한 네덜란드인 이작 부스트는 말한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사제 수업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폴란드와 필리핀 등 외국 출신들이며 이들은 사제직에 대해 "매우 사무적이고 권위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교황청은 네덜란드 뿐 아니라 사제들이 교리 문제에 대해 너무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미국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처한다. 문제는 이것 뿐이 아니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사제단은 교회의 보편적 가르침을 교황과 동등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워낙 매스컴의 슈퍼스타가 되다 보니 주교들은 물론 추기경들까지도 2등급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은 지난 15일 콘클라베 준비회의에서 논의된 `집단지도체제' 문제와 직결돼 있다. 이 때문에 시스티나 성당에서 진행중인 비밀 투표는 권력 집중을 주장하는 교황청 운영기구 쿠리아와 분권을 주장하는 많은 주교 등 양대 세력 사이의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콜린스는 추기경들이 거대한 하나의 보수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관념을 콘클라베가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이 살아 있을 때는 추기경들이 자발적인 생각이 없는 것처럼 움직였지만 이제 교황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들의 독립성이 강하게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로마 AFP=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