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이 세계각국의 정치ㆍ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참석하고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8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됐다. 교황 선종 엿새 만에 열린 장례식은 성 베드로 성당 안에 안치됐던 교황 시신이든 관이 성당 밖으로 운구된 뒤 장례미사, 하관식, 안장 순으로 3시간 동안 장엄하게 거행됐다. 종이 울린 뒤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함께 성가가 시작되는 가운데 소박한 목관이 성 베드로 성당에서 카펫이 깔린 광장 중앙 제단 앞으로 운구되면서 장례미사가시작됐다. 추기경들의 붉은 제의 자락과 복음서 페이지가 바람에 날리는 가운데 흰 주교관을 쓴 추기경들이 제단 주변에 자리한데 이어 복음 낭송, 미사를 대표 집전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강론이 이어졌다. 라칭거 추기경은 "성당과 로마 거리에 모인 신도들과 종교 지도자들, 세계 모든이들에게 감사한다"며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치에 대한 저항 활동을 펼쳤고 지칠줄모르게 세계 곳곳을 방문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고 교황의 삶을 회고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은 특히 젊은이들을 매우 아꼈다. 이론적인 연구보다는젊은이들을 직접 이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몸소 실천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에 인간을 초월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여 차례의 박수로 간간이 강론을 중단하기도 한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이 마지막으로 거처 창문으로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린 일을 회고하며 목이 메었다. 그는 "교황이 마지막까지 성직자의 자세를 보였다"며 "특히 마지막 몇달 동안은고통 속에서도 신과 신도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칭송했다. 강론에 이어 대륙별 대표들의 예물 봉헌으로 시작된 성찬의 전례, 성체를 받아모신다는 의미의 영성체 의식이 진행됐다. 장례미사 뒤 요한 바오로 2세의 소박한 관은 역대 교황들이 잠들어 있는 성 베드로 성당 지하 묘지로 운구됐다. 교황은 "땅속에 묻어 달라"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 성당 지하의 땅 속에 묻혔고단순 대리석판이 위를 덮었다. 삼나무, 아연, 참나무 등 3중관에 안치된 시신 곁에는 재임 기간 주조한 메달과 고인의 삶을 담은 문서들이 함께 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안장된 곳은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여겨지는 묘지 인근이다. 이날 장례식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모하마드하타미 이란 대통령,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 등 전세계 100여개국의 국가원수및 고위 인사들,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해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교황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인 최창무 대주교와 총무인 장익주교, 그리고 이해찬 국무총리가 이끄는 민관 조문단이 참석했다. 장례식장 정면 왼쪽에는 추기경단과 주교단 등 각국 성직자 600여명, 오른쪽엔이탈리아 정부 지도자들과 각국 국가원수 및 고위 인사 1천400여명, 정면 아래 쪽에는 각국 조문단 대표들이 자리했다. 광장에서 테베레강 쪽으로 뻗어있는 콘칠리아치오네 대로와 주변 도로들에는 전례없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톨릭 신도와 로마 시민들이 운집했다. 이날 장례식장과 주변에는 최고 100만 인파가 운집한 것으로 추산됐다. 성당과 광장 등 시내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현장 중계를 지켜봤다. 이날 장례식을 보기 위해 교황의 고국 폴란드에서 200만명 등 전세계에서 최고400여만명이 순례길에 오른 것으로 추산돼 인구 270만명의 로마가 포화 상태를 빚었다. 당국은 원활한 장례 진행을 위해 오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대중교통수단을 제외한 일반 승용차와 트럭의 로마 시내 통행을 금지하는 전례없는 조치를 취했다. 이탈리아 군경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8㎞ 반경 로마 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설정했으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대공 미사일, 저격수, 폭발물 탐지팀을 동원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또 바티칸 앞을 흐르는 테베레 강에는 해군 순찰 경비정이 배치되는 등 육.해.공 합동 보안 작전이 펼쳐졌다. 당국은 이날 8천여명의 보안 요원을 장례식장 주변에 배치했고 사복경찰 2천여명이 동원해 성 베드로 성당 안팎에서 암행 순찰 활동을 벌였다. 장례식 뒤 후임 교황 선출권이 있는 80세 이하 추기경단 117명은 18일 오전 미사를 봉헌한 뒤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비밀회의인 콘클라베를 시작, 첫 투표에 들어간다. 추기경단은 교황이 선출될 경우 성당 굴뚝으로 흰 연기를 피워 올리는 전통적인방식 외에 종도 함께 울리기로 했다. (바티칸시티=연합뉴스) 이성섭 특파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