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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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로 널리 알려진 안네 프랑크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13살 때였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암스테르담 인근의 은신처에 기거하면서 2년 남짓 동안 기록한 일기는 어른들 세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용기가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다.
게다가 사춘기 소녀의 마음까지도 일기장에 온통 담겼기에 감동이 더하는 듯하다.
일기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느낀 생각을 진솔하게 기록하기에 자기만의 것으로 은밀하게 가지고 싶어한다.
안네의 일기도 이웃에 살았던 네덜란드인이 우연히 발견해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아버지가 1947년에 '어느 소녀의 일기'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내 삶의 소리'라 할수 있는 일기장을 깊은 곳에 숨겨두기는 생전의 안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수십년간 관행적으로 계속돼 온 일기장 검사가 뜨거운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엊그제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동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개선의견을 교육부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육의 현실을 모르는 탁상머리 처사'라는 의견과 '아동의 인권보호'라는 반론이 대립되어 있는 양상이다.
일기를 쓰게 함으로써 초등생들의 작문능력이 향상되고 정서와 인성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사받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작성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양심을 속이는 일을 결과적으로 교사가 부추기는 꼴이 되어서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옛날과 다르다.
고학년이 되면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다.
그러기에 간직해야 할 비밀이 많고 어른들이 공감할 수 없는 생각도 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느낌을 적은 학생들의 일기장이 검사와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글쓰기를 지도하고 자기반성을 유도하는 일이라면 일기장만이 전부는 아닐 성 싶다.
외국처럼 과목별로 적절한 과제를 준다면 소기의 교육효과를 훨씬 더 높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일기장 검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생활 보호와 양심의 자유는 우리 사회의 진일보한 인권의식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반가운 마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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