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두 사람의 독도지킴이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조선 숙종시절의 안용복으로 부산 동래에서 어부로 살던 평민이었다. 1693년 3월 어느 날,그는 울릉도에서 전복을 따던 중 일본 어부들과 시비끝에 일본으로 끌려가게 된다. 억류된 안용복은 회유와 협박을 물리치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확인하는 서계(일종의 외교문서)를 받아내는 담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대마도주가 두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담판을 지었다. 3백여년 전의 일이다. 또 한 명은 독도수비대장 홍순칠이다. 울릉도 태생인 홍씨는 독도 부근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일본해경에게 체포되는 일이 빈번하자,1954년 초 33명의 장정들을 모아 독도로 건너갔다. 어쩔 수 없이 변칙적인 방법으로 미군부대에서 입수한 무기로 3년8개월 동안 고도에 머물면서 일본 해경과 10여차례 교전을 벌였고 57년 말 경찰에 섬을 인계한 뒤 물러났다. 소설보다도 더 재밌는 이 실화는 '독도수비대'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에 와서도 우리 땅 독도를 지키려는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다투어 독도수호대에 참가하는가 하면 아예 주민등록지를 독도로 옮기겠다는 사람들도 줄을 잇는다. 사이버 외교사절단인 반크는 세계를 돌며 독도와 관련된 오류 등을 수정하고,때로는 사이버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엊그제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조례를 제정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본측의 처사는 또 한번의 영토침략행위에 다름아니라며 정치인 문화예술인 시민단체 등이 모두 나섰다. 독도 인근의 풍부한 어족자원과 엄청나게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하이드레이트란 천연가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일본의 속내를 차제에 근절시켜 버리겠다는 기세다. 우리에게 독도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어서 일본에 대한 배신과 불신은 과거사와 오버랩돼 더욱 깊어만 간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노도처럼 일어선 우리의 저항이 종전과 달리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