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는 또다시 눈물을 삼켜야했다. 한껏 부풀어올랐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꿈 역시 꺾였다. 대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에는 웃음 꽃이 활짝 폈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제목 그대로 '대단한' 영화가 됐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말은 허름한 가게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보석 같은 물건을 뜻한다. 28일(한국시간) 열린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까지 거머쥐는 대박을 터뜨렸다.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막강한 세를 과시했던 스콜세지의 '에비에이터'는 주요 부문 중 여우조연상(케이트 블란쳇)만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반면 1993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던 이스트우드는 이번에도 감독상과 작품상을 양손에 쥐는 기염을 토했다. 이미 지난 1월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에 대한 기대 역시 높게 했던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스타 배우에서 이제는 거장 반열에 오른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작이다. 인간사 희로애락을 이제는 다 깨우친 듯한 일흔네살 이스트우드의 세심하고 따스한 시선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더 이상 희망도 기쁨도 없을 것만 같은 인생들이 만난다. 과거에는 이름을 날리는 트레이너였으나 이제는 돈 한푼에 벌벌 떠는 복싱 체육관 관장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은퇴한 복서 출신의 체육관 관리인 스크랩(모건 프리먼). 하루하루 시덥지 않은 말싸움을 하며 보내는 이들 앞에 어느날 서른 한살의 무모한 웨이트리스매기(힐러리 스웽크)가 나타난다. 복서로 치면 환갑인 나이에 복싱을 하겠다고 덤비는 그녀를 프랭키는 처음에 철저히 무시한다. 그러나 스크랩의 '농간'으로 둘은 파트너가 되고, 프랭키의 트레이닝을 거친 매기는 시합에서 승승장구한다. '미스틱 리버'로 2003년에도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이스트우드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다시한번 '연륜'이 왜 중요한지를 조용히 증명했다. 스타와 젊은 감각, 큰 스케일이 대세를 이루는 할리우드에서 그가 여전히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어깨에 쌓인 세월의 흔적 때문일 터. 덕분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는 오래 끓인 곰국처럼 깊고 부드러운 맛이 우러난다. 이스트우드는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93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이 자리에 섰을 때 어머님이 84세였다. 그런데 지금 96세로 여전히 객석에 앉아계신다. 우리 집안의 유전자에 감사드린다"며 웃었다. 1930년생으로 1955년 '리벤지 오브 더 크리에이쳐'로 데뷔한 이스트우드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 등 일련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와 함께 대성공했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출연한 '더티해리' 역시 큰 인기를 끌어 5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이어 그는 19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시작으로 감독도 겸하게 된다. '브롱코 빌리' '파이어 폭스' '버드' 등을 거쳐 마침내 1993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작가' 대열에 들어선다. 90년대 들어서도 '사선에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앱솔루트 파워' 등의 작품에서 주연 또는 감독으로 맹활약한 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오늘 공로상을 타신 분들에 비하면 난 아직 어린아이(kid)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