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지난 2000년 출간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통해 미국 증시의 IT 거품붕괴를 예견함으로써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사실 '비이성적 과열'이란 말은 그린스펀 연준리(FRB) 의장이 96년 미국 경기가 과열양상을 빚으면서 투자자들이 이성을 잃다시피 증시에 몰려드는 사태를 진정시킨 역사적 명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실러 교수가 이번에는 그의 저서 개정판에서 미국 부동산시장의 거품붕괴와 집값급락을 경고하고 나왔다. 오늘날 정보통신의 발달로 누구나 부동산 가격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자 주택가격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고,점점 더 내집마련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인해 서둘러 집을 장만하려 하면서 집값을 계속 밀어올리고 있다는 것이 그 요지다. 한마디로 주택가격은 항상 오른다는 잘못된 관념과 과도한 흥분이 투기를 부추겨 이미 비이성적 과열단계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값이 자꾸만 오르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들 집값이 오른다고 하니까 뒤질세라 은행 돈 끌어대 부동산 투기 내지는 투자에 골몰하면서 실제로 집값이 뛰는 식이다. 그 결과가 소득대비 65%에 이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비율이고,은행이자 갚느라 장기 소비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집값거품이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물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한때 일본형 부동산 거품붕괴가 우려됐지만,집값폭등이 일부 지역의 현상이고 교육환경이 집값을 좌우하는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거품이 끼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거품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정말 그럴 듯하다고 여길 만큼 설득력 있는 논리로 무장되고,그래서 수많은 대중이 불나방처럼 모여들면서 형성된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것이 거품이 아니라고 믿게 된다. 우리의 경우 낮은 은행 금리에다,갈곳을 찾지 못하고 틈만 나면 부동산을 노리고 있는 4백조원의 시중 부동자금,아직 서울은 87% 수도권 93%에 불과한 주택보급률이 집값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수요가 있으니 오른다고는 해도 서울 강남에는 지난 5년동안 3~4배나 집값이 폭등한 곳이 즐비하다. 그동안 물가가 그렇게 뛰지도 않았고,그만큼 주거여건이 좋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1백평 안팎의 아파트가 무려 30억~40억원을 호가하고 판교아파트 분양을 받으려고 수십만명이 줄서 기다리면서 로또판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은 아무래도 정상적인 시장의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초강수 대책을 쏟아내면서 집값 잡기에 올인하고 있지만 기대를 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판교발 투기불길을 끄기 위해 분양가 규제의 칼날을 빼들었는데도 주변 집값은 꿈쩍도 않고 더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 재건축 규제강화는 주택공급 부족을 초래해 몇년 뒤 또다시 집값폭등의 진원(震源)이 되지 않을까 걱정만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집값에 대한 과도한 흥분이자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우리 부동산 시장이 미국 일본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결국 과열의 끝은 거품이고,거품은 언젠가는 터지게 돼 있다. 일순간에 거품이 터지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 이후 우리 경제에 닥쳐올 후폭풍이 무엇보다 두려운 것이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