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 개념이 깨지면서 고용과 노후에 불안을 느낀 직장인들이 안정된 전문직을 얻으려고 뒤늦게 의대와 약대ㆍ한의대 등으로진학하는 `신(新) 기러기족'이 늘고 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인 이들은 결혼 후 맞벌이를 하거나 혼자 직장에 다니다 "부부중 한명은 안정된 평생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 다시 대학문을 두드리는사례가 부쩍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입학경쟁이 상대적으로 치열한 서울 소재 대학보다는 지방대를 선택하는경우가 많아 부부 중 한명은 수도권에서 일하며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다른 한명은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신기러기족으로 불린다. 신혼의 즐거움도 멀리한 채 기꺼이 별거를 선택한 데는 자녀가 성장하기 전에확실하고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추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들은 여유있는 미래를 위해 `이산가족'의 어려움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녀의 조기유학 때문에 부부가 어쩔 수 없이 해외와 국내에 떨어져 사는 '기러기족'과 차이를 보인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 근무하다 자녀 출산으로 1998년 퇴직한 이모(32.여)는 전업 주부로 지내다 1년6개월간 공부를 해 2003년 3월 전남 모대학교약대 3학년 과정에 편입학했다. 이씨의 남편은 가족생계와 이씨의 학비를 벌기 위해 수원에 있는 대기업의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씨는 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 5살 난 큰 아이와 함께살고 있고, 남편은 직장 때문에 수원에 거주하고 있다. 이씨는 "장기적으로 볼 때 남편 혼자서 생계를 떠맡기엔 경제적으로 불안했다.약사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정년퇴직도 없고, 평생직업인데다 육아문제가 생기면 임의대로 쉴 수 있어 약대 진학을 결심했다"며 대학 재도전의 이유를 설명했다. 뒤늦은 약대 편입 결심에 주위에선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이씨와 남편은 "3년만고생하자"며 서로 격려했고, 이씨 부부의 `일리있는' 설득에 시댁도 이씨를 전폭 지원했다. 이씨는 "학기 중에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지만 3년만 고생하면 좀 더 안정적인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에 별거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의 학과에는 결혼 후 늦깎이로 편입한 학생이 무려 10여명이고 이중 절반정도가 가족과 떨어져 사는 신 기러기족이라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충북의 한 의대에 다니고 있는 김모(33)씨는 이씨와 대조적이다. 아내가 직장에다니고 자신이 30살 넘어 뒤늦게 의대 진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의대 본과 1학년에 편입한 김씨는 공대 석사학위를 받고, 2002년까지한 화학회사에서 일하다 의대 편입을 결정했다. 김씨는 "결혼을 한 상태여서 대학진학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혼 뒤생계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면서 회사원의 `숙명'같은 것에 대해 회의를 느낀 나머지 고소득을 위해 의대로 진학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결혼 3년차인 김씨의 아내는 김씨가 지방대에서 의학공부를 하는 사이에 서울에서 한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김씨는 "2살난 아이는 처가에서 맡아 키우고 있어 주말만 되면 세 식구가 처가에서 모인다"며 "본과 3학년 때부터 서울 캠퍼스에서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다른 사람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전했다. 2003년 대전의 한 의대 본과 1학년에 편입한 서울 명문대 생명공학계열 석사 출신의 최모(31)씨는 미국 이민을 고려하는 경우다. 자신이 지방에서 의학 공부를 하는 동안 음악을 전공하는 최씨의 부인(27)은 아예 독일로 유학을 갔다. 최씨는 "내가 의대를 졸업하는 시점에 아내가 독일유학을 마치게 돼 그때쯤 미국에 같이 가 살 계획이다.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하거나 직장을 얻으려면 의학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서 한살이라도 젊을 때 의대공부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려운 결정을 한 신 기러기족에게 육아가 가장 걱정스런 문제다. 대부분 결혼 초기인 신 기러기족의 자녀는 아주 어릴 때 부모중 한명과 떨어져수년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육아문제가 학업 못지 않게 힘든 짐인 셈이다. 전남의 약대에 다니는 이씨는 "학업때문에 연고도 없는 곳에 와 있는데다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이 부족해 아쉽다"며 "`엄마 학생'들이 늘어나는 만큼 학교나 정부에서 시설이나 비용 측면에서 육아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