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관련 외교문서의 공개를 둘러싼 `불똥'이 한나라당쪽으로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는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가 정치적으로 악용돼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소장 개혁파와 비주류 일각은 "당은 과거사 문제를 회피해선 안된다"면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18일 한일협정 관련 외교문서 공개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한일협정 관련 일부 문건의 공개로 당시 박정희(朴正熙) 정부의 굴욕적인 대일협상 실체가 드러나 일제하 징용자 등 피해 당사자 및 후손들의 불만이 들끓기 시작한지 하루만이다. 박 대표는 당 운영위에 참석, "이(한일협정 협상 관련 외교문서 공개) 문제는외교적, 법률적, 역사적 문제가 얽혀 있다"면서 "역사적 문제는 역사학자가 풀어야하고, 법률적 문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자신의 잣대로 편리하게 평가하려는 유혹들이 많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역사적 평가는 역사가에게 맡기고 정치권이 개입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대표가 이처럼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은 외교문서 공개를 계기로,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과오'를 `소재'로 삼아 제1야당 대표이자 대권주자인 자신을 흠집내려는 시도를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이미 당 안팎에선 박 대표를 겨냥한 듯한 발언들이 잇따르고 있어, 자칫 `1.11당직개편'으로 당을 새롭게 이끌려는 박 대표의 위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원희룡(元喜龍) 최고위원은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한일협정 문서공개를통해 일제하 징용에서 피해를 받은 우리 국민은 당시 정부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실상이 드러났다. 굴욕외교.졸속외교였다"면서 "과거사 논란을 떠나 국민의 피맺힌 한에 대해 한나라당이 풀어주고 가야 한다"고 과거사 문제를 비껴가선 안된다고 각을세웠다. 그는 또 "당시 정부가 피해당사자 개인배상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라면서 "당이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주도했던 `6.3세대' 출신이자 박 대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이재오(李在五)의원도 6.3동지회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야당은 정치적악용을 우려해 미온적이거나 소극적으로 비켜가려 하지 말고 당당히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주류 인사들의 이같은 박 대표에 대한 과거사 공세는 향후 노선투쟁과 맞물려당내 갈등을 증폭할 `화약고'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3.4공 시절의 추가적인 자료공개나 친일 등 과거사진상규명작업이 본격화되면 당 밖에서도 역사적 재조명을 명분으로, 영화 등 대중예술을 동원한 `박근혜 때리기'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의식한 듯 박 대표측은 "정치적으로 볼 때 박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고 박 대표는 박 대표"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 대표를 과거사 문제로 연결짓는 시각을 비판했다. 당 핵심관계자는 "`정치인 박근혜'는 한일협정 협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느냐"면서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