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회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식민지 시절 노동자.군인.군속으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생존자.사망자.부상자 103만2천684명에대해 총 3억6천400만달러의 피해 보상을 일본측에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통상부가 17일 오전 일반에 공개한 한일회담 문서 5권 중 `한국의 대일청구권 8개 항목에 관한 양측 입장 대조표'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했던 1인당 피해 보상금은 생존자는 200달러,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천650달러와 2천달러였다.


이는 지난 1975∼77년 2년간 실제로 사망자 8천552명에 한해 보상한 25억6천560만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뿐아니라, 결과적으로 당시 정부가 일본의 `청구권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개인 보상 청구권을 `활용'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이번에 공개된 정부문서와 연합뉴스가 별도로 입수한 제5∼6차 한일회담 회의록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1962년 `김-오히라 메모'에서 합의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 1억달러 이상'의 자금 명목을 `청구권'으로 관철시키려 한 반면, 일본측은 어떻게든 이를 피하고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명칭을 집요하게 주장한 사실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어 일본 정부의 이율배반성을 드러내 주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대일전후보상 소송에서65년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발뺌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65년 5월 14일 일본 외무성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7차 한일회담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6차 회의 회의록에는 일측 수석대표(니시야마)가 "우리측의제공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는 등 일본이 당시 배상이나 보상은 아예 배제한 채 `경제협력'을 주장했음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와 관련, 최소한 도의적, 인도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들 문서는 식민지 피해 청산을 요구해야 하는 피해자 한국은 일본의 자금 조기 확보 등에 급급한 나머지 오히려 `쫓기는' 입장에 처한 반면, 가해자 일본은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듯 시종일관 냉정함과 여유를 잃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어 한일회담이 `구걸외교'였다는 당시의 비난 여론을 실감케 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일 전후보상 요구 소송에서 통한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청구권 협정 2항의 `(개인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조항과 합의 의사록의 `(한국측은) 앞으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조문을 둘러싼 양측의 막판 신경전은, 일본정부가 `청구권 자금' 액수 등에만 집착했던 한국측의 초조감과 협상 전략 부재를 이용해 개인 청구권의 `완전 소멸'을 주도면밀하게다그치고 유도해 관철시켰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들 문서는 한국정부가 당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를 내세워 북한분 `청구권'까지 요구했다가 사실상 일본측으로부터 거절당한 대목도 잘 드러나 있다.


이와 관련, 1965년 4월 16일 도쿄에서 진행된 이규성 주일공사와 일본 외무성의사토 세이지 참사관간 면담에서, 일측은 개인관계 청구권 문제의 분류와 법적 문제 처리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으나, 우리측은 그 것은 그 해 3월 24일 이동원-이시나 도쿄 한일외무회담에서 소멸됐음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의 문제는 양국이 각각 국내적으로 어떻게 소화하느냐만 남았다며 오히려 조속한 타결을 주장했다.


양측의 그러한 입장은 나흘 후인 4월 20일 일본 외무성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7차 한일회담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1차 회의 회의록에서도 이어졌다.


이 회의에서 니시야마 아키타 일측 수석대표는 "청구권의 내용이 각양각색이므로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어 후일 여러가지 분쟁이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서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청구권 ▲재일한국인의 청구권 처리 ▲소멸되지 않는 청구권의 범위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이규성 한측 수석대표는 "각종의 청구권이 덩어리로 해결된 것으로되었는데 그 다음 그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결국 각각 국내의 문제로 취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양국간에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에 앞서 1964년 5월 경제기획원과 외무부 사이에 오간 질의와 답변에서 기획원측은 "현재 진행되는 교섭은 민간인 보유 대일 재산청구권의 보상을 전제로 한 것인가, 또는 개별적인 보상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질의한 데 대해, 외무부는 "개인청구권도 포함해 해결하는 것이므로 정부는 개인청구권 보유자에게 보상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라고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개별보상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무부는 "단, 개인이 정당한 청구권을 갖고 있을 경우에 정부가 보상해야 하고,이에 청구권의 법률 근거와 증거 제시 문제, 일본원화표시로 된 청구권의 환율문제등이 검토되어야 한다"면서 정부 관계기관간의 협의 및 대책수립을 제시했다.


이날 공개된 1천200여쪽에 이르는 한일회담 문서에서 이런 사실들이 확인됨에따라 국내 피해자 및 그 유족들의 보상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경우에 따라 한일협정에 대한 재협상 요구가 뒤따를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11월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재정경제부 등 6개 관련부처 차관들로 특별팀을 가동한 데 이어, 지난 달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대책기획단을 구성, 개인 피해 구제시 소요될 재원 규모와 확보방안,관련 보상 입법체계 등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작년 2월 서울 행정법원의 공개 판결 이후 정부의 항소로 현재 서울 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문건들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주요 협상 경과 등에 관한 보고서, 훈령, 전문, 관계기관간 공문, 한일간 회의록 등 5권이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