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지도부와 쿠웨이트가 1990년 걸프전쟁 이후 14년간 가슴속에 묻어둔 응어리를 풀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임시 지도부가 12일 쿠웨이트 땅을 밟았다.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쿠웨이트 공식 방문은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14년만에 처음이다. 사담 후세인 전(前) 이라크 정권의 쿠웨이트 점령은이듬해 1월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반격으로 6개월만에 끝났다. 그러나 (故)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당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지지했고, 다국적군의 쿠웨이트 `해방전쟁'을 반대했다. 쿠웨이트는 다국적군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쫓아낸뒤 취업 등의 이유로 쿠웨이트에 머물던 4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했다. 쿠웨이트에 남아있던 많은팔 레스타인인들이 점령자에 부역했다는 죄로 법정에 기소되기도 했다. 한때 PLO의 최대 재정 지원국이었던 쿠웨이트는 아라파트가 죽는 날까지 용서하지 않았다. 쿠웨이트는 팔레스타인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아라파트의 사과를 요구했다. 아라파트가 하지 못한 사과를 12일 압바스가 대신 했다. 걸프지역 순방에 나선 압바스 의장은 쿠웨이트 도착 일성으로 "우리가 과거 쿠웨이트에 대해 취했던 입장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압바스 의장은 전 방문국인 요르단을 떠나기 전에도 팔레스타인-쿠웨이트 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며 과거사는 모두 끝났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쿠웨이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과거 입장을 공식 사과했다. 쿠웨이트 지도부는 압바스의 방문 전날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필요없다며 화해를 향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셰이크 사바흐 알-아흐마드 알-사바흐 총리는 압바스의 방문 전날 현지 언론회견에서 자치정부가 이라크의 침공과 관련해 취했던 입장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나의 형제 아부 마젠(압바스)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압바스는 셰이크 사바흐 총리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고 화답했다. 압바스는 쿠웨이트 언론과의 회견에서 자신이 총리를 맡았던 지난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했다며 당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입장은 "옳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라파트의 후계자인 압바스의 사과와 셰이크 사바흐 총리의 용서는 쿠웨이트-팔레스타인 관계의 굴곡을 지우는 역사적 대목이다. 쿠웨이트의 진보적 일간지 알-카바스는 압바스의 방문으로 양국 쌍무관계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쿠웨이트는 공식 관계 단절이후에도 아랍연맹과 국제단체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왔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방문을 강력 반대했던 의원들의 목소리도 예상보다 작아졌다고 현지 언론은 논평했다. 일단의 쿠웨이트 의회 의원들은 전날까지도 "PLO가 쿠웨이트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기 전에는 압바스의 방문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강경 이슬람계 의원들은 압바스의 방문을 허용한 정부 결정을 국민 통합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압바스는 총리시절이던 지난해 8월 쿠웨이트를 방문하려다 사과 수위를 둘러싼 이견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는 지난 5월 쿠웨이트 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개인자격으로 방문했다. 양측간 공식 관계 단절이후 지금까지 쿠웨이트를 방문한 최고위 인사는 파이살후세이니였다. 자치정부의 예루살렘 담당관이던 그는 2001년 5월 쿠웨이트 방문 중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