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노동현장에 산업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추구하는 국가들은 물론 노동조합의 분배 요구가 강했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노사간 상호 신뢰와 협력을 모색하며 기업경쟁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런 변화 흐름은 무엇보다 경제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데다 경기가 장기간 침체하면서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절감한 때문이다.


일부 노동전문가들은 기업활동을 위한 필수 생산요소로 토지 자본 노동 외에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생산적 노사관계까지 포함시키고 있을 정도다.


이제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선진국 기업 노사는 좌·우간 이념 대립을 끝내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노동조합도 내몫 찾기보다 파이 키우기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한때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독일 노동조합이 올해 임금 인상 없는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한 것은 시대적 흐름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노사현장은 어떤가.


아직도 노사 협상 철만 되면 온 나라가 분규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일쑤고 기업들은 엄청난 생산 차질로 홍역을 앓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노조의 전투적 노동운동에 겁 먹어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서울지하철 노조나 LG칼텍스정유 노조가 높은 임금 수준과 양호한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 '더 많고,더 좋은' 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것은 아직도 구시대적 노사 관행이 노동현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 산업현장에는 희망이 살아 있다.


기존 갈등과 대립 관계를 청산하고 신뢰와 협력을 다지며 경쟁력 강화를 꾀하는 실용주의 세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전쟁을 벌이듯 투쟁을 일삼는 것과는 달리 노동현장 한 쪽에서는 노사 모범 사업장들이 묵묵히 생산활동에 전념하며 우리 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올해도 노동부는 신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48개 사업장을 선정했다.


우리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는 기업들로 지난 2000년 제정된 이후 모두 3백여곳에 달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노사화합 캠페인을 처음 실시한 지난 95년부터 따질 경우 산업평화를 1차례 이상씩 선언한 기업은 10년 동안 5천개가 넘을 것으로 노동부는 추산하고 있다.


노사분규를 연례행사처럼 벌이는 일부 대립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산업평화클럽'에 참여한 셈이다.


올해 노사분규가 4백40건을 넘으며 지난해보다 50%가량 늘었지만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산업평화의 바람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신노사문화 우수기업 가운데 KT는 한때 우리나라 노동현장의 파업 중심지로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으나 이제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유지하며 노사 안정을 꾀하고 있다.


노사가 분배를 둘러싸고 집안싸움을 벌이면 벌일수록 결국 기업이 골병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의 파업을 겪으면서 절감한 것이다.


또 교보생명 LG기공 태평양 동방 한전기공 등도 대립적 노사관계를 훌훌 털어버리고 노사 한마음으로 파이를 키우며 어려운 경제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