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설까지 나돌았던 야세르 아라파트(7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여전히 생사의 갈림길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 교외 페르시 군(軍) 병원의 수석 군의관인 크리스티앙 에스트리포는 5일성명을 통해 "아라파트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지 않았다"면서도 "앞선 병세 발표 이래 변동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해 그가 여전히 위중한 상황에 있음을 시사했다. 병원측이 아라파트의 건강상태를 공식 발표한 것은 가족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에스트리포는 짧은 성명을 읽은 뒤 뇌사여부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절답하지 않았다. 앞서 파리 주재 팔레스타인 특사인 레일라 샤히드는 이날 RTL 라디오와 회견에서 뇌사 상태가 아니라 종류는 모르지만 회복 가능한 혼수상태라면서도 "건강상태와나이를 고려하면 생과 사의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샤히드는 그러나 아라파트가 뇌사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프랑스와 이스라엘 언론의 보도를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요세프 라피드 이스라엘 법무장관은 이스라엘 TV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아라파트 수반이 뇌사상태에 빠져 의료진이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가자지구의 아빌 샤아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도 아라파트가 임상적으로 사망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그는 그러나 "아라파트 수반은 위험한 상황에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전되지도 악화되지도 않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아라파트는 지난달 29일 2년 넘게 연금생활을 하던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에서 페르시 군병원으로 이송돼 정밀검진과 치료를 받고 있으나 아직 최종 진단 결과가 발표되지 않아 병세를 둘러싸고 억측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아라파트는 추가 검사를 받기위해 마취 주사를 맞은 뒤 혼수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혼수 상태에서 뇌 세포는 충분한 혈액, 산소, 당분을 공급받지 못해수면에 빠져 드는데 이후 환자는 회복될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 숨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순히 마취로 인해 혼수상태가 유발됐다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다른 심각한 문제가 원인이라면 회복 가능성은 적어진다. 한편 아라파트의 위독설이 퍼지자 페르시 군병원 밖에는 아라파트 지지자 수십명이 모여 대형 팔레스타인 기(旗)와 아라파트 사진을 병원 담에 붙이고 연일 밤샘을 하며 아라파트의 쾌유을 기원하고 있다. 이들은 '인티파다(봉기)는 승리할 것이다', '항쟁자는 절대 죽지 않는다' 등의문구를 적은 포스터를 내걸고 대 이스라엘 저항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이날 병원 정문 밖에서는 또 뉴욕 출신의 유대교 랍비가 아라파트 수반 앞으로꽃을 놓고 가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에 눈길을 끌었다. (파리=연합뉴스) 이성섭 특파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