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은 물론 전체 중동 아랍권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검진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우려했던 권력투쟁이나 내전의 전조도 보이지 않고, 아라파트의쾌유를 기원하는 충정과 팔레스타인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憂國)으로 가득차 있다. 아라파트가 `잠시' 떠난 상황에서 감히 그의 권위를 탐하거나 도전할 엄두를 내는 사람도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라파트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와 아흐마드 쿠라이 현 총리에게 위임했다. 두 사람은 31일 팔레스타인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공동 주재했다. 자치의회도 이날 비상 소집돼 대책을 논의했다. 30일에는 가장 강력한 정치조직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집행위원회가 압바스 전 총리 주재로 열렸다. 아라파트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두 사람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일치단결과아라파트에 대한 충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아라파트의 좌석을 비워두고 옆에 앉는 등 아라파트의 절대적 지위를 존중했다. 아라파트의 노선을 줄곧 비판해온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무장단체들도 당분간 정쟁을 중단하고 아라파트의 쾌유만을 기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라파트를 수행해 파리에 머물고 있는 측근들은 시시각각 병세 호전 소식을 전하고 있다. 백혈병도 아니고, 죽을 병도 아니지만 정확한 병인은 모른다는 얘기다.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독극물 중독 여부도 검사한다는 소식이다. 오는 2일 또는 3일로 예상되는 프랑스 의사들의 검진 소견이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정치적 고려 때문에 극도로 비관적인 발표가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만일 아라파트가 소생 불가능한 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라파트 위독설 후 각종 시나리오가 나돌았지만 현재로선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아라파트가 치료를 받고 라말라나 가자지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둘째,그가 사망하거나 은퇴후 망명생활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어떤 가정에서도 아라파트가 과거처럼 PLO와 자치정부를 동시에 장악하고 절대권력을 누리던 시대는 끝났다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사망할 경우 권력투쟁과 내전을 방불케하는 무정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 후 제도 정치권 진입을 노리는 하마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특히 아라파트의 권력 산실인 파타운동 내부의 다양한 치안조직들과 무장단체들간 분쟁이 유혈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팔레스타인 관리들이나 분석가들은 권력을 잡기위한 책략이 전개될수는 있겠지만, 권력투쟁이나 장기간의 내전을 예측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의 분석은 다르다. 범아랍 신문 알-쿠드스 알-아라비의 논설위원 압델 바리 아트완은 "아라파트가 아프든지 죽든지 그의 대안은 정치적 혼돈"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정(失政)과 부패의혹, 병적인 권력집착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해방과 독립국건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아라파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하지만 그가 없는 팔레스타인의 장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중동 전역에 퍼지고 있다. 45년간 팔레스타인 민중의 독립투쟁을 상징해온 그가 사라질 경우, 공백을 채울 인물을 찾는데 100년은 걸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