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코(美智子) 일본 황후가 20일 고희(古希)를 맞았다. 미치코 황후는 궁내청 출입기자단의 서면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발표한 문서에서 민간인 출신으로 첫 황족이 된데 대해 "나를 받아들인 황실과 긴 역사에 흠이 돼서는 안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내가 태어난 서민의 역사에 상처를 남겨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밝혔다. 인상에 남는 기억으로는 결혼하던 날 아침 부친이 "`천황과 황태자의 뜻을 잘받들라'고 말한 것과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꼭 끌어안아 주던 일"을 들었다. 요양중인 마사코(雅子) 황태자비에 대해서는 "가족중에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는것은 가족 전원의 슬픔"이라고 전제, "모두가 쾌유를 원하며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미치코 황후는 닛신제분(日淸製粉)사장인 쇼다 히데사부로의 장녀로 출생한 평민가 출신의 첫 황족이다. 아키히토(明仁)현 천황은 1957년 8월 휴양지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테니스 시합을 한 것이 계기가 돼 미치코 황후와 교제를 시작했다. 황후의 친가는 평민이라는 신분상의 차이를 내세워 정중히 거절했으나 황태자는끈질긴 프로포즈를 했고 이로 인해 미치코가 결혼을 결심한다. 일본 황실이 민간에서 배우자를 선택한 것은 쇼무(聖武)천황(724∼749)이래 처음이다. 천황과 황후는 59년 4월 10일 결혼했다. 당시 결혼식 장면을 보기 위해 TV 판매량이 급증하고 테니스가 선풍적 인기를 끌 정도로 두 사람의 결혼식은 화제가 됐다. 미치코 황후의 결혼은 황족들의 심한 반발을 샀으나 시아버지인 쇼와(昭和) 천황이 "이제 황실에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고 감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미치코 황후는 평민 출신답게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고 천황에 대한 헌신적인 내조로 유명하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와카(和歌·일본 고대 시)모음집인 `등불'을 96년천황과 함께 내기도 했다. 대학시절 우정을 쌓은 한국인 친구 2명과 지금도 계속 관계를 이어올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연합뉴스) 이해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