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테러범들과 협상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거듭 천명한 가운데 영국인 인질 케네스 비글리 가족의 애타는 절규가 TV를 통해 잇따라 방영돼 영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3일 영국 외무부는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비글리의 동영상이전날 공개됐음에도 "협상은 없다"고 밝혀 비글리가 미국인 인질들과 마찬가지로 참수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비글리의 태국인 부인 솜뱃(Sombat)이 이날 영국 TV에 출연해 이라크 무장테러단체 `유일신과 성전(알 타우히드 알 지하드)'에 보내는 공개 호소문을 발표했다. 솜뱃은 태국어로 "내이름은 솜뱃 비글리다. 켄 비글리의 부인이다. 우리는 7년전에 결혼했고 나는 그를 매우 사랑한다"면서 "부디 자비를 베풀어 켄을 석방함으로써 내가 그와 다시 결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솜뱃의 이 같은 발언은 동시통역사에 의해 영어로 통역됐다. 비글리는 전날 공개된 동영상에서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아내를 다시 볼 수있도록 도와 달라"고 블레어 총리에게 간청했는데 이는 부인인 솜뱃이 영국인이 아니라 태국인으로 아직 영어가 서툰 상태임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인 것으로 보인다. 태국에 머물고 있는 솜뱃은 전날 비글리의 동영상이 공개된 것과 관련, "남편의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며 "이라크의 보통 사람들을 돕기를 원했던 평범한 가장인 내 남편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비글리의 아들인 크레이그도 영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납치범들에게 "당신들의 단호함과 강력한 의지는 이미 세상에 잘 알려졌다"면서 "정년 퇴임을 앞둔 아버지를 위해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했다. 반면 비글리의 남자 형제인 폴은 이라크 법원이 여성 수감자 석방을 결정해 비글리가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면서 "미국이 그의 생환을방해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블레어 총리에 대해서도 "호화 휴가를 갈 시간은 있으면서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며 "납치범들의 요구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글리의 고향인 리버풀에서는 영국 성공회의 제임스 존스 주교와 이슬람성직자 아크바르 알리가 이례적으로 기독교.이슬람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비글리를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비글리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리버풀 월튼 마을의 교회에서는 수백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철야 기도가 계속되고 있다. 한 이웃 주민은 BBC 방송 인터뷰에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초조하다"면서 "하루 종일 TV 뉴스를 보면서 비글리의 석방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