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와 집권 사회민주당이 유럽연합(EU) 헌법안 채택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바꿨다.

한스 랑구트 독일 정부 부대변인은 30일 "정부는 EU 헌법안 채택을 의회에서든국민투표를 통해서든 가능하면 빨리 마무리 지을 방침"이라면서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일이 상ㆍ하원에서 모두 통과할 경우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안겔리카 슈발-뒤렌 사민당 하원 원내부총무도 "EU헌법 채택같은 매우 중요한 일은 유권자들에게 직접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사민당 지도부도 유사한 발언을 했다고 공영 ARD방송 등은 전했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국민투표에 부칠 경우 EU 헌법 채택이 부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독일 헌법상 이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음을 들어 의회에서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이날 랑구트 대변인과 슈발-뒤렌 부총무 등의 발언은 이러한 기존 방침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는 국민투표 실시 여론이 일반 국민 뿐아니라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 갈수록확산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시사 주간지 슈테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1%가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했으며, 16%만 반대했다.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독교사회연합 당수와 귀도 베스테벨레 자유민주당 당수는 국민투표를 주장해왔다.
제1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 지도부는 의회 투표를 선호해왔으나 최근 들어 기민련 내 국민투표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정부와 여당이 국민투표 실시도 가능하다고 방침을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시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히틀러의 나치 독재가 국민투표에 의해 정당화된 일을 경험한 독일은 전후 제정한 헌법에서 국민투표를 할 수 없도록 규정했으며, 16개 주의 경계선을 변경하는 일만 가능토록 했다.

따라서 EU헌법 채택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선 상.하원에서 각 3분의 2의 찬성으로 독일 헌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하다.
. 현재 하원은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연합이, 상원은 야당이 각각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적녹연합 내엔 아직도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의원이 훨씬 많다.

따라서 정부와 집권 여당이 최근 노동.복지 개혁정책에 대한 동독지역의 반발이거센 가운데 EU 헌법안 채택 문제도 국민투표 불가론을 고집할 경우 입게 될 정치적부담을 고려해 일단 표면상으로 방침을 선회한 것으로 일부에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 찬성론자들이 이를 계기로 움직임을 강화할 것으로 보여 EU 헌법 채택을 위한 독일 헌법 개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지 만은않다고 독일 언론은 전망했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