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여성이 윤락업소에 취업하면서 업주로부터 받은 선불금을 갚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은 온당치못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성매매 여성을 경제적으로 옭아매기 위해 선불금 제도를 악용해온 업주들의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서 윤락행위를 알선.유인.강요하는 과정에서 생긴 채권의 효력을 무효로 규정한 윤락행위등 방지법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주목된다.

대법원 1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18일 유흥업소 주인에게서 1천100만원의 선불금을 받은 뒤 변제하지 않은 혐의(사기)로 기소된 업소 종업원 조모(22)씨에 대한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이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에 수긍이 가고 채증법칙 위배나 법리오해 위법이 없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지난 5월 판결에서 "선불금은 유흥업소 여종업원이 급료의 일부로서 업주에게서 미리 지급받는 돈으로서 이를 갚지 않았다라는 이유만으로 사기죄를적용해선 안된다"며 "실제로 근무할 의사가 있었는지, 변제를 못한 것이 업주의 책임이 기인한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씨는 선불금을 지급받은 후 약정한 2개월간 업소에서 근무했으나업주가 급료에서 결근비, 선이자, 수수료 등을 공제해 급료를 거의 지급받지 못했다"며 "조씨가 계속 근무를 요구했음에도 거절당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조씨가 선불금을 변제할 수 없었던 사정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에서 선불금은 급여의 선지급금이 아니라 조씨에 대한 인적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 윤락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강하다"며 "조씨가 선불금을 변제하지 않았다는 사정 만으로 사기죄를 인정하긴 어렵다"고덧붙였다.

조씨는 2002년 12월 유흥주점에 취업하면서 직전 업소 빚과 카드빚 1천100만원을 선불금으로 받았다가 이를 변제하지 않은 혐의로 약식기소됐다가 조씨의 청구로정식재판에 넘어간 뒤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씨 변호를 맡은 강지원 변호사는 "이 판결에서 업주가 조씨에게 윤락행위를알선한 것이 인정됐는데 이 경우 업주의 선불금 채권은 윤락행위등방지법에 따라 무효로서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며 "업주를 상대로 협박.공갈 및 `2차' 강요 등의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피해여성 재활지원을 위한 다시함께센터'도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 "선불금 사기사건을 일반 대여금 사기사건과 구별해 어떻게 판단해야할 지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고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논평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번 판결은 선불금을 갚을 의도가 있었지만 업주의 횡포 등으로 갚지 못했을 경우 사기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판시한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선불금을 받은 뒤 도주한 경우 여전히 사기죄 적용대상"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