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부진 장기화와 물가 상승 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장기복합불황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세계적 투자은행 등 외국계투자기관들은 대체로 이같은 비관적 시각이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현재 재정적으로 양호한 상태인만큼 시기를 놓치지 말고 당장재정정책과 세금 및 금리 인하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 일본.남미식 장기 불황 가능성 낮다 외국계증권사 임원들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과거일본 및 남미식 장기불황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로 "근거가 희박하다"고 일축했다.

한국은 일본의 장기 불황 진입 당시와는 달리 부동산 등 자산 가격에 지나친 '거품'이 있다고 보기 힘든데다 기업과 은행의 부실화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지적이다.

이원기 메릴린치 전무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일본이나 남미식 불황 가능성을거론할 수 있나"고 반문하면서 "지나친 과장에다 자극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무는 "일본은 장기불황 진입 당시 10년간의 호황 끝에 주가가 주가수익비율(PER)상 50~100배까지 치솟았고 부동산 가격도 현재 한국의 가격 수준과 비교할때 5배 이상 높을 정도로 거품이 심했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현재 부동산, 카드 문제 등으로 초래된 가계부실을 치유하는과정에서 구조적 침체가 아닌 순환기적 침체를 겪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본적으로 한국은 남미 등과 달리 신생산업이 사양산업을 계속 대체해가는 '활력있는 경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유동원 씨티그룹증권 이사 역시 "언론 등 한국내에서의 비관적 시각은 지나친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유 이사도 "서울 일부 지역에 국한된 가격 급등은 있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지난 15년간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GDP성장률,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거품'상태라고 볼 수 없고 향후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낮다"며 일본과의 차이를 지적했다.

그는 중소기업 부실 문제 역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해도 현 은행들이 충분히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만큼 과거 일본처럼 지속적으로 은행권이 기업부실을 떠안는구조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임지원 JP모건 이사도 "한국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들의 부채비율이나 무차별적 부동산 투자 등 거품 요소가 많이 해소됐을 뿐만 아니라 은행권도 강력한 '클린화'작업을 거친만큼 과거 일본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 스태그플레이션 언급도 '시기상조' 수출성장세 둔화 및 물가 상승 추세와 함께 부상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아직 거론하기 이른 단계라는 지적이 많았다.

메릴린치 이 전무는 "스태그플레이션은 말 그대로 성장이 멈춘상태에서 물가만오른다는 것인데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이를 언급한다는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이어 "원유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한국 물가가 '비용압력'을 받고있는 것은 사실이나 최근 5%대인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2~3%대로 떨어지지 않는한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내년에도 한국의 수출은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증가세만 다소 둔화되고 내년 내수가 6~7% 성장, 회복하면서 수출을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했다.

메릴린치는 올해와 내년 한국의 GDP 성장률을 각각 5.5%, 5%로 전망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유 이사도 "대체로 한 사회의 물가 상승률이 경제 성장률의 두 배이상 정도는 돼야 스태그플레이션을 논할 수 있다"면서 "우리(씨티그룹증권)는 한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 성장률을 4.5% 내외로 전망하고 물가 상승률은 3~4%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만큼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는 내년 한국의 수출 증가율을 10~15% 선으로 예상하면서 수출 성장세는둔화되더라도 우려할만한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 상반기부터 소비가회복되면서 내년 전체로 4% 정도의 내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의 임 이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태그플레이션 등의 표현이 남발되고 있으나 체감경기상 '스태그플레이션적 분위기'를 언급할 수는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교과서적 정의로는 분명히 한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낮다"고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생필품 가격을 기준으로 한 생활물가지수가 7월에 작년동월대비 5.8%나 올랐다는 점은 체감경기상 고물가, 저성장을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지적했다.

반면 모건스탠리의 샤론 램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일 "현재까지 한국의 유일한성장 동력이었던 수출이 반도체 수요 감소, 중국경기 하강, 미국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이는 반면 유가 상승 등으로 물가는 크게 올랐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이 점차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정부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 나설 때 외국계 증권사들은 현 상황에 대한 지나친 과장과 비관적 시각은 전혀 도움이되지 않지만 한국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도 역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재정상태가 매우 건전하고 경기 부양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왜 몸을사리고 적극적으로 내수 진작 등을 위해 움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씨티그룹증권의 유 이사는 "한국은 GDP대비 정부부채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편에 속한다"면서 '충분히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쓸 수 있고 또 그만큼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조금씩 나눠 집행하기보다 과감히 강력한 부양책을 써야 내년 하반기쯤에나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적극적 경기부양이 늦으면 늦을수록 경기 회복에도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리인하 역시 한국 정부가 부동산 문제 등을 우려해 꺼리고 있으나 부작용보다는 경기부양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금리인하 필요성을 제기했다.

JP모건 임 이사도 "일본식 장기 불황 등에 빠질 위험은 적지만 내수 회복이 계속 부진한 가운데 다른 나라들의 경기가 하강하며 외적 수요마저 꺾인다면 경기침체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정부에 적극적 내수 부양을 주문했다.

임 이사 역시 "한국 정부는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고 있는만큼 경기부양을 위해여러 정책을 써 볼 수 있는 여력이 많다"면서 "내수부양을 위한 세금인하 등과 관련,정부내에서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단순히 이를 세수 감소로 인식하기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봐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