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헌 회장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본인이 다끌어안고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외형보다는 내실을 기하는데 집중하겠다"

정중동(靜中動)속에 `제2의 도약'을 위해 뛰고 있는 `현대호'의 수장 현정은 회장은 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고 정몽헌 회장 1주기를 맞는 소회를 묻는 질문에 대해 "더 이상 지난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짧게 답했으며 통화내내 말을아꼈다.

그만큼 지난 1년이 힘든 시기였으며 `가족간 싸움'으로 대변된 경영권 분쟁의여진이나 세간의 이목에서 헤어나 일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의지로 비쳐졌다.

사실 현회장은 8개월간의 `경영권 분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그룹경영에 복귀,업무점검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특히 현대경제연구원을 주축으로 계열사별로준비중인 그룹 중장기 비전 발표를 앞두고 있어 막판 `밑그림 짜기'에 여념이 없다.

현회장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 "몽헌 회장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으며 처해진현실을 견디지 못해 그러한 결정(죽음)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혼자 모든 것을 안고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성장과정을 중심으로 현재 방영중인 TV드라마와 관련, "실제와 다르게 남편이 나약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현회장은 지난해 8월 남편인 정몽헌 회장의 사망 이후 숨가쁘게 진행된 경영권분쟁의 한 가운데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았던 인물이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현회장을 재벌가의 며느리, 평범한 가정주부의 길을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지난해 10월 그룹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취임 직후부터 경영권 파동의 격랑을 온 몸으로 겪었으며 결국 그룹을 지켜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가신을 퇴출시키는 결단을 보이기도 했다.

현회장은 "`외형 키우기' 보다는 내실을 기하는데 주력할 것"이라며 "전문경영인 체제도 계속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 현회장은 "그룹 임원 상당수가 건설 출신인데다 건설은현대그룹에게 있어서는 `고향' 같은 존재여서 희망사항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며 "당장은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 전했다.

또 "대북 사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 계승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현회장은 지난 5월에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과 함께 방북,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과 만나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건설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현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아산, 현대상선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 의장도 겸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말 경영권 분쟁 종료 후 그룹 해체 후 사라졌던 격주제의 계열사사장단 회의와 영업본부장, 관리본부장 회의를 부활시켰고 수년간 각각의 행보를 보여왔던 그룹 계열사들도 현회장을 구심점으로 해 결속력을 되찾아 가고 있다.

현회장은 또 그룹 경영전략팀에 이어 지난 4월말 자신의 집무실도 적선동 현대상선 사옥으로 옮기고 핵심 계열사이자 중간 지주회사격인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한그룹 재편 및 `포스트 MH' 체제 구축에도 적극 나서왔다.

자사주 매입 및 우호세력에 대한 매각 등으로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의 경영권의 안정화를 이뤄냈고 엘리베이터.상선이 1분기 창사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가하면 대북사업도 모처럼 활기를 띠는 등 출발은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다.

현회장은 정몽헌 회장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경영 체제를 중시, 많은 부분은 계열사 사장단에게 맡기되 굵직굵직한 현안에 있어서는 `강단'을 발휘하는 `외유내강'형이라는 후문이다.

그는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에 연루됐던 그룹의 아픈 과거 때문인지 임직원들에게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현회장은 "지난 3월 다른 기업 CEO 9명과 함께 윤리경영 서약식에 참가했다"며"양심적인 기업경영 수준을 한단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분쟁 종료 후)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었고 차근차근 업무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해운 경기 호조 등으로 상선도 실적이 좋았고 다른 계열사들도 좋은 실적을 냈지만 앞으로 여러가지 변수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화해 여부와 관련, 현회장은 "그동안 집안 제사 등 자연스러운 자리에서 만나뵐 기회가 없었다"며 여운을 남겼다.

현회장은 "시대도 바뀌었고 젊은 세대들이 계속 뻗어올라오고 있는 만큼 기업이나 조직문화도 그에 맞게 부드럽게 바뀔 필요가 있다"며 "인재 경영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몽헌 회장 사망 이후 다소 침체돼 있던 그룹 분위기가 그 사이 많이 밝아진가운데 계열사별 교류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으며 계열사 신입사원 합동수련회도 올해 4년만에 부활됐다.

현회장은 1주기 제사는 성북동 자택에서 조촐하게 지낼 계획이다.

현회장은 또 4일 새벽 경기도 하남 창우리 몽헌 회장 선영을 찾는데 이어 계열사 사장단과 신입사원 합동수련회 참석차 금강산을 방문한다.

현회장은 남편의 뒤를 이어 사업을 성공시킨 애경유지 장영신 회장 같은 사람이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으며 옛 현대그룹의 명성을 되찾아 재도약을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기자 hankso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