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국가로부터 468명의 탈북자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남북관계가 안갯속에 빠져들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10주기 조문불허에 대해 비난해 왔던 북한이 이번에는 탈북자 입국에 대해 강한 어조로 반발해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29일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6.15공동선언에대한 전면위반이고 도전이며 우리 체제를 허물어보려는 최대의 적대행위"로 규정하고 "이 사태가 빚어낼 후과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이 책임지게 될 것"고 경고했다.

북한이 일반 탈북자의 집단 입국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은 과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장승길 전 이집트주재 대사 등 주요 인사의 탈북과 장길수군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 사무소 진입에 대해 비난했지만 90년대 후반 들어 생계형 탈북자가 급증하면서 일반 탈북자의 남한행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것'이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던 북한은 이번 집단 입국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실태가 더욱 부각될 수 있음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특히 이번 사건이 최근 미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된 것과 때를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단순한 생계형 탈북자의 입국이라기 보다는 인권을 내세워 북한체제 붕괴를 노리는 '의도적 행위'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지난 24∼26일 금강산에서 열린 8.15남북공동행사 실무접촉에서 북측은 동남아 탈북자 국내 송환에 대해 2차례에 걸쳐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시하며 장관급회담 무산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26일과 29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한 남측의 제15차 장관급회담 일정협의에 대해 '상부에서의 지시가 없음'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일단 장관급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당분간 남북관계가 소강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향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9일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번 탈북자의 대규모 입국이 불만스러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 정부도 국내외 여론을 감안해서도 이들의 입국요구를외면할 수는 없었던 일인 만큼 당분간 냉각기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북측이 아직까지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한 남북간 협력사업에 응해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다.

북측이 최근 들어 대북 식량차관 계약서와 청산결제 관련 품목 등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된 문건 4건 등을 정상적으로 보내왔다는 것. 통일부 당국자는 "당분간 당국간 회담 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경제협력사업을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며 "그 속에서 서로 오해를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대화가 일시적으로 경색되고 민간부분도 일부 단절돼도 대북 화해협력기조는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