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간 21일 제주도 정상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않다.

회담 형식과 내용 면에서 과거 정상회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담 개최도 북핵문제가 중대 전기를 맞은 아주 민감한 시기에 열리기때문이다.

우선 이번 회담의 의제는 북핵문제로 압축된다.

북핵문제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전략적 협력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라는게 정부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장관도 20일 국무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회담은북핵문제의 모멘텀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한일양국이 더욱 협력해 이를 발전시켜보자는데 전략적 목표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북핵문제는 지난 6월 베이징(北京) 3차 6자회담을 계기로 큰 진전을 이뤘다.

지난달 2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남북한과 미.중.러.일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고 가능한 빠른 시일내 실무그룹회의를 열어핵동결의 범위, 기간, 검증 방법과 상응조치를 구체화하기로 합의함으로써 4차 6자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켜 놓았다.

이로 인해 4차 회담에서는 `핵동결 대 상응조치'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6자회담 이후 남북한 사이는 물론이고 북일, 북미 간에도 적지않은변화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남북한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1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두차례에 걸쳐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지난 2000년 7월 첫 외교장관회담 이후 4년간 한번도 회담이 없다가 두차례나 연이어 만남으로써 최근의 남북간 우호관계를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백남순 북한 외무상도 회담을 갖고 의미있는 대화를 나눴다.

파월은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고, 백 외무상은 조선은 미국을 영원한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의 핵심 실세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최근 한.중.일 3개국을 순방, 북핵문제를 집중 논의한 데 이어 존 볼턴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도 현재 한.중.일 3개국을 순방, 북핵해법 마련을위한 다양한 해법을 모색중이다.

이런 가운데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최근 행보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적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대북 문제에 적극성을 보였고 대북 수교에도 적극적이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이즈미의 이런 태도가 대북 해빙무드 속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촉매제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비록 고이즈미의 이번 방한이 국빈방문은 아니어서 `화려함'은 없지만 작년 2월노 대통령 취임식, 같은해 6월 노 대통령 방일, 10월 `아세안+3' 정상회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회동 등 4차례의 회담을 통해 다져진 신뢰를 기반으로 양국 정상이 북핵과 관련해 구체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외빈내화'(外貧內華)의 정상회담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흘러 나오는 것도 이러한 관측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5월 북일(北日)-미일(美日)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의중을 두루 탐색했고, 최근에는 니혼(日本) TV에 출연, "1년내 북한과 수교를 성사시키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고이즈미 총리의 이같은 `대북 카드'는 지난 11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를의식한 측면이 적지 않아 앞으로도 계속 대북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이번 한일 정상은 북핵 해결을 위한 협력, 북핵 해결후 남북관계및 북일수교 문제 등을 놓고 격의없는 대화를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울러 ▲한일관계 미래 비전 ▲동북아시대 구상 실현을 위한 한일간 전략적 협력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이라크 임시정부 조기정착을 위한 국제협력 ▲한미-미일동맹 관계와 한미일 공조 ▲동북아 지역정세 및 지역협력 ▲일본내 한류(韓流), 한국내 일본문화, 한일 문화교류 증진 등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은 회담 형식의 `파격성'이다.

청와대측은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상대국을 오가며 빈번히 만나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는, 이른바 한일 정상간 실무회담 성격의 `셔틀외교'라는 새로운 정상외교의 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양측 수행원 규모를 최소화했고, 공동성명 대신 공동기자회견으로 대체했다.

양국 정상은 회담기간 내내 노타이 차림의 간소복장으로 임하게 된다.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핵심관계자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실무방문해 연 1회 이상 정상회담을 갖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한일정상간 실무방문 회담은 92년11월 노태우(盧泰愚)-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93년11월 김영삼(金泳三)-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96년6월과 97년1월 김영삼 전대통령-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간 모두 네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서울=연합뉴스) 조복래 고형규기자 cbr@yna.co.kr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