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무역 직원 김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된 지 1주일 만에 살해됨에 따라 정부의 석방교섭 전략과 능력이 뒤늦게 비판대에 오르게 됐다. 정부는 외교부 대책반을 요르단에 급파하고 이라크 주재 대사관을 통해 현지 종교 지도자 및 유력인사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 가능한 공식ㆍ비공식 채널을 모두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김 씨 피랍 발표 직후 신속히 파병원칙을 재확인하는 한편 제3자를 중재자로 내세워 석방협상을 벌이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올해 초 일본인 인질 석방 당시 일본 정부가 벌인 협상 전략과 비슷하다. 정부가 파병 원칙을 즉각 재확인하고, 국내 언론이 관련 보도를 홍수처럼 쏟아내면서 아랍 언론에도 서울의 반응이 여과없이 전달됐다. 카이로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와 관련, 한국 정부의 강경방침 천명과 국내 언론의 과다한 보도가 아랍언론에 그대로 전해지면서 납치단체를 자극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알-자지라 방송은 서울의 분위기를 "한국, 인질의 SOS 신호 불구 파병원칙 재확인"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파병 반대 촛불 시위 등 한국 내 여론의 추이도아랍권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김 씨를 납치한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는 종교적 광신도 단체나 단순 폭력단체가 아닌 알-카에다 산하 정치 테러단체임이 분명하다. 이들은 한국정부로부터 유연한 정치적 제스처를 기대했지만 외견상 강경 방침이 나오자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집트 중견 언론인 아흐마드 샤즐리는 범인들이 정치적 흥정이나 금전적 대가를 노렸더라면 처음부터 통첩 시한을 24시간으로 정하지 않고 길게 제시해 타협의여지를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납치범들은 정치적 명분을 달성하기 어렵다고판단되면 즉시 `처형'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이용한 중재자의 성격과 능력도 의문이다. 주이라크 대사관은 김 씨가붙잡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팔루자를 중심으로 성직자 단체와 이슬람계 정당 간부등을 접촉 창구로 삼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납치단체는 알-카에다 이라크 총책으로 통하는 아부 무사브 자르카위 휘하 무장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이라크 자생 저항단체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간 정치테러 단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지하드(聖戰)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종교관과 어긋나는 외국인 인질에 대해선 참수나 화형 등 무자비한 살육도 불사한다. 정부가 이라크 내부 종교 지도자들을 접촉 창구로 활용했다면 애초부터 잘못된접근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아랍에 대한 이해 부족과 아랍 관련 인재 풀이 협소한데서 나온 것일 수도있다. 주 이라크 대사관과 외교부에 아랍어 전공 인력이 몇 명 있지만 아랍 전문가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라크나 주변 아랍국 정부와 공식ㆍ비공식 창구를 통해 저항세력과 직간접적 채널을 확보해놨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정부 내에 아랍 전문인력을 늘리고, 아랍권과 형식적 우호관계가 아닌 실질적이고 진지한 이해와교류를 심화해야 한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충고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