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2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제3차 북핵 6자회담에서는 기존 쟁점인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 원칙과 북한의 HEU(고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 보유 여부에 대한 논쟁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두 차례의 본 회담과 한 차례의 실무그룹회의를 거치면서 주요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이 서로 입장 차이를 분명하게 확인한 터여서 이번 회담을 통해 이견을 좁힐 지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은 이번 회담에서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6자회담 무용론이 제기될 수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비교적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회담 전망과 관련, 현재로서는 북한의 태도변화 조짐과 최근 미국이 내비친 '유연한' 제스처, 일본의 매개역할 확대 등을 바탕으로 한 낙관론과 기존 쟁점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원칙 고수'를 근거로 한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회담에 앞서 예상되는 쟁점을 항목별로 살펴본다. ◇ 'CVID' 이견 해소되나 = 6자회담 회담장에서는 적어도 'CVID'라는 용어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13∼1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일 3자협의회에서 3국이 "CVID 용어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며 필요하다면 'CVID'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정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 달 12∼14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제1차 북핵실무그룹회의에서도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조지프 디트라니 국무부 한반도 담당 대사는 "북한이 원한다면'CVID' 용어 대신 다른 표현을 쓸 수도 있다"는 신축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로 'CVID'에 대한 견해차가 좁혀질 것 같지는 않다. 'CVID'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은 그 표현보다도 내용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핵무기 계획을 투명하게 포기하겠지만 'CVID'원칙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표현은 양보할 수 있지만 내용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완강한 태도다. 'CVID'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도 미국과 궤를 함께 하고 있어 이번 회담에서도 'CVID'의 내용과 관련한 '뜨거운' 공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HEU 향배는 = 3차 6자회담 개막에 앞서, HEU와 관련된 공방은 '엉뚱하게' 미국-중국간에 터졌다. 중국의 저우원중(周文重) 외교부 미국담당 부부장이 지난 8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라늄 핵 프로그램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으며, 그것이존재하는지도 모른다"면서 회의적인 시각을 전했고, 이에 미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미국은 지난 9일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이 발언을 비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나서 방미 중인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에게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리 부장은 "내용을 알아보겠다"고 말해 일단 수습 국면에 들어선 상태다. 북한은 HEU 핵프로그램 보유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론 '애초부터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차 북핵실무그룹회의 남북 양자접촉 때 한국측의 HEU 문제제기에 대해 "그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즉답을 피한 바 있다. 지난 2월 파키스탄의 핵물리학자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진술을 근거로 '핵파일'을 축적해 온 미국은 이제는 북한의 HEU 핵프로그램 존재에 대해 확신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HEU와 관련, '있다 시인하라'는 미국의 주장과 '없다 날조다'라는 북한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 돌파구는 있나 = 한국과 러시아가 주목 대상이다. 한국은 나름대로 '획기적인' 안(案)을 마련해 미국, 일본을 설득중이다. 이 안은 북한이 'CVID' 원칙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은 '핵동결 대 상응조치'에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에 대한 미.일이 이번 3자협의회에서 어떤 입장을 정리했는 지 주목된다. 그간 회담에 비춰볼 때 북한이 원하는 '핵동결 대 상응조치'는 대북 에너지 및경제지원, 경제제재 해소, 안보 우려 해소 등으로 압축된다. 특히 지난 4일 미 행정부의 고위관리가 미국이 한국의 북핵해결 3단계 안을 수용했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 한국측의 '획기적' 안에 대한 미측의 '유연한' 반응을보일 지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지난 6일 싱가포르 제3회 아시아 안보대화에서 "러시아가 (지난 1차 북핵 실무그룹회의에서) 매우창조적인 구상을 제안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 차관보의 이런 언급은 러시아의 중재안이 관련국 간에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의 중재안은 이르쿠츠크 가스전의 가스관을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잇는방안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동북지방의 여름 유휴 전력을 북한을 거쳐 한국측에 판매하는 방안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추정이다. 이르쿠츠크 가스의 경우 북한 내에 가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점으로 미뤄단기적인 에너지원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가스 공급원이 필요한 한국에 이르쿠츠크 가스는 매우 절실하며 이를 통해 북한은 가스관 통과 비용을 챙길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가스 인프라를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러시아 동북지방의 여름 유휴전력 판매 방안의 경우 한국은 발전소를 추가로건설하지 않고 전력 최대 수요기인 여름철에 예비전력을 확보할 수 있고, 북한은 전력 통과 비용도 받고 6자회담 참가국의 지원으로 송배전 시설도 확충할 수 있고, 러시아는 남는 전력을 팔 수 있다는 점에서 3자가 '윈-윈'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 북 태도변화 현실화되나 = 지난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 북한이 신중하기는 하지만 태도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방중 당시 중국 고위인사와의 만남과 그 다음 달인 5월 고이즈미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북핵 6자회담과 관련, 신축성과 인내심을 강조했으며 지속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자회담 참가 자체를 '카드'로 사용했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두 번째 만의 장성급회담에서 서해상 무력충돌방지에 선뜻 합의한 것도 눈에 띈다. 남북 군사당국간에 초보적인 군사 신뢰조치를 이뤄야 한다는 우리측 요구에 북한이 응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 참석 중인 리종혁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통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남북이 현재의 좋은흐름을 계속 끌고 나가 남북관계를 크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을 전한 것도 이번3차 6자회담에서 북한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의 이런 언급은 '의전적인' 수준을 넘어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적극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관측에서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남북간 협력은 더욱 본격화될 것이며 우리는 그때에 대비해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6자회담에서 북측 태도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