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8일 새 총리 후보로 지명한 열린우리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은 여권의 대표적인 정책기획 및 전략 전문가로 꼽히는 5선 중진의원이다. 과거 총리직은 관료 출신이나 학계, 법조계 인사들이 독차지해 왔지만, 이 지명자가 국회 인준을 통과할 경우 최초의 재야 출신이자 한글세대 총리로 기록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지명자의 발탁 배경에 대해 "대표적인 기획통이자 정무통이며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하는 스타일"이라며 "대통령이 국정과제를 원활히수행하도록 내각을 책임있게 통할하고 현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이지명자가 정책기획 및 추진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음을 밝혔다. 이 지명자는 청년 시절에는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을 통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선두에 섰던 투사였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중이던 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지금의 김근태(金槿泰) 의원과 함께 투옥됐고,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한번 옥고를 치르는 등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사회 진출 후에도 민청련 상임부위원장, 민주통일국민회의 정책실 차장, 민통련정책실 차장 및 부대변인,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 민주평화통일연구소장등 재야운동에 전념했다. 36살이던 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제도권'인 원내에 진출한 뒤 서울 관악을에서만 내리 5선을 기록하면서, 97년 15대 대선에서의 여야간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2002년 16대 대선을 통한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했다. 초선의원 시절 노동분야 입법활동에 주력, 노 대통령과 이상수(李相洙) 전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불리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88년 광주청문회 때 계엄군의 광주시민에 대한 살상 행위를 낱낱이 밝혀내는 `면도날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했다.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난 95년 조 순(趙 淳) 서울시장 곁에서 정무부시장으로 행정경험을 쌓았고, 국민의 정부 초대 교육부장관으로는 교육개혁을 진두지휘하며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교육개혁 추진 과정에서 교원정년 단축을 강행해 교육계의 반발을 샀고,99년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일선 고교 야간 자율학습과 월간 모의고사를 폐지해학력저하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당시 그가 추진한 교육정책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있었던 고교생들을 지칭하는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도 이 때 생겨났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이 지명자의 정책기획 능력을 높이 사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1번, 민주당 정책위의장 2번 등 정책위의장에만 3차례 기용했다. 지난 95년 첫 지방자치선거에서 조 순씨를 서울시 민선 시장에 당선시켜 선거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96년 15대 총선기획단장, 2002년 15대 대선 선대위 기획본부장,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기획단장 등 여권이 기획력을 필요로 할 때 항상중심에 있었다. 서울대 72학번 동기인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정동영(鄭東泳) 전당의장과 막역한 사이이고, 유시민(柳時敏) 의원은 한때 그의 보좌관이었다. 지난달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 대표에게 석패했으나, 이번에 총리에 지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매사 냉철하고 분명하게 처신하고 소신과 추진력이 강하지만, 이런 성품 때문에`독선적'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부인 김정옥(金貞玉)씨와 1녀. ▲충남 청양(52) ▲서울대 사회학과 ▲민청련 상임부의장 ▲13-17대 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교육부장관 ▲민주당 정책위의장(2회) ▲민주당 최고위원 ▲2002년 노무현 후보 선대위 기획본부장 (서울=연합뉴스) 맹찬형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