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북한정권 수립 당시 핵심역할을 했던 소련파 한인 거두 허가이 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자살이라는 북한당국의 공식발표와 달리 총에 맞아 타살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과 강인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은 13일 통일연구원이 한국학술재단의 후원으로 개최한 '북한사회주의체제의 형성과 변화: 해외구술자료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공동발제문에서 허가이의 딸과 친지들의 증언을 인용해 이 같이 밝혔다. 이들 연구원은 의사의 검진 없이 가족이나 친지의 입회조차 하지 않은 채 급히 매장이 이뤄졌고, 또 이후 가족과 관련 인사들의 사인규명 노력을 북한당국이 저지한 점 등을 들어 허가이의 사인에 대한 조작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1950년대 말까지 북한에 체류했던 허가이의 딸 허마이야씨는 목격자로부터 "어떻게 자살하는 사람이 총으로 자기를 뒤에서 쏜단 말이오. 그 아바이(허가이)가 뒤에서 쏜 총에 맞아 목격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허가이의 또 다른 딸 허리라씨는 아버지가 1908년에 출생, 1953년 7월 2일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1945년 11월 입북한 허가이는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고속 승진, 북조선공산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및 신설된 검열위원회 위원장, 조선노동당 제2부위원장 겸 조직부장, 농업담당 부수상 등을 지냈다. 허가이의 친구인 장학봉씨의 증언에 의하면, 1940년대에 북한에 파견된 소련파 한인은 438명이었다. 그중 우즈베키스탄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은 261명이었으며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사람은 가장을 잃고 가족만 귀환한 경우를 합쳐 총 62가구에 그쳤다. 북한에서 숙청당하지 않고 생존한 소련파 한인은 방학세 전 중앙검찰소장, 김봉율 전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학인 전 조선혁명박물관장 등 3명 뿐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기자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