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백화점 할인점 등에 납품하는 업체들의 권익단체 설립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후 기자는 협력업체 움직임을 잡기 위해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다. "글쎄요. 그런 얘기가 납품업체 사이에서 나온 적은 없는데요. 잘 모르겠습니다." 협력업체들로부터 '환영의 목소리'를 기대했던 기자는 한결같은 무관심 내지 부정적 반응에 의아했다. 혹시나 싶어 이번엔 백화점업계의 정보통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납품처별 업종별로 업체들이 워낙 잘게 나뉘어져 있어 정부 지원책이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반응들이었다. 협력업체를 상대하는 한 바이어는 "상인들의 속성은 철저히 맨투맨이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친다는 건 소설같은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쯤되자 공정위가 방안을 검토한 배경이 궁금해졌다. "영세업체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정책담당자로서 아이디어를 낸 수준이었다"는 한발 물러선 답이 돌아왔다. 물론 납품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하고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시장에 공정 경쟁 게임의 룰을 만들지 않고 단체를 만들어 대항토록 유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정책일까?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번 공정위의 석연치 않은 정책배경에 '자리만들기 향수'와 '공무원 만능사상'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표시한다. 다단계업계를 정화하기 위해 만든 공제조합에 공정위 출신 공무원이 내려온 게 오래지 않다. 국내 유일의 공기업 백화점으로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는 '행복한세상' 사장에 산자부 공무원 출신이 안착한 지도 불과 1년 전이다. 공무원 만능사상이 낳은 탁상행정의 사례는 많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과 행정권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재래시장 살리기' 정책은 건물주와 상인의 다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전시행정에 가깝다. "작은 정부를 만들지 못하는 한 국민소득 2만달러는 애당초 물건너간 것 아닐까요." 공정위의 시각에 허탈해하는 한 백화점 최고경영자의 푸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