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美那 < 서울대 교수.사회문화교육학 > 80년대 초반 미국유학 시절, 여러 가지로 편리하리라는 생각에서 거래은행에 신용카드 발급을 요청했다.지불능력이 미덥지 못한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신청은 거부당했고, 결국 귀국할 때까지 신용카드를 갖지 못했다. 20년 후, 한국도 드디어 신용카드가 활성화됐다.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카드를 소지할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신용불량자 4백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니다.아니 오히려 더 심각하다. 20대 경제인구 10명중 4명이 신용불량자라고 한다. 이제 사회로의 걸음마를 막 시작할 즈음이었을텐데, 신용불량자라니…. 내게 신용카드 발급을 해주지 않겠다고 신중을 기하던 미국사회가 이해됐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가정·학교·사회는 젊은이들의 신용불량사태에 대한 공범자들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기죽이지 않겠다며 원하는 것은 다 사주려 한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나 했지, 용돈관리와 같은 초보적 경제교육조차 무관심하다. 학교는 딱딱한 경제이론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삶과 연관시킨 소비나 신용관리교육을 도외시했다. 사회는 청년들에게 카드를 남발하며, 과소비를 유혹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신용불량자 사태에 대한 거시적 대책을 서둘러 실시한다면, 가정과 학교는 미시적 접근으로 신용문맹해독교육을 '제대로' 출범시킬 시점이다. 개개인을 신용관리주체자로 만들어서,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다"라는 절체절명의 진리를 실현할 때인 것이다. 우선 부모는 자녀에게 용돈관리교육을 시작하자.첫째, 자녀의 필요와 부모의 지불능력을 함께 고려해 용돈 액수를 의논하고 정한다.소비능력에 따라 소비수요가 정해져야 한다는 신용관리의 기본을 가르치는 것이다. 둘째, 용돈의 액수는 노력해야 맞출 수 있는 정도로 빠듯해야 한다. 무한한 욕망과 제한된 자원과의 싸움이 인생이라면,풍족한 용돈은 인생과 배치되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셋째, 용돈을 더 달라고 조르는 자녀의 요구를 원칙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졸라서 용돈을 더 받는'식으로 길러진 자녀는 '번 돈 내에서 써야한다'는 신용관리 기본수칙을 지키기 어렵다. 넷째,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용돈이 떨어졌을 때 고생하며 견디게 만드는 것도 좋은 교육이다.가불이나 훈계보다는 학습을 시켜보라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신용불량의 대가를 미리 치러보는 체험교육이다. 다섯째, 절약과 용돈교육은 다르다.'무조건 아끼는'게 아니라 '적정화된 소비'를 하자는 것이 용돈교육의 목표이다.제한된 용돈을 어떻게 나눠 써야 자녀가 가장 행복할지를 스스로 깨우쳐 나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섯째, 불균형 지출로 인해 자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곳에 용돈을 쓸수 없을 때가 교육의 호기이다.조언은 미리 할게 아니라 자녀가 그 조언을 받아들일 시점에서 해야한다는 의미다.자녀와 부모가 벌어진 사태에 대해 원인·결과·대책을 토론한다면,자녀는'한계효용이 같도록 자원(용돈)을 안배함으로써 효용극대화가 일어난다'는 경제학적 진리를 각인하게 될 것이다.물론 부모가 합리적 소비로 모범을 보이는 모델링 교육도 중요하다.자녀는 부모를 통해 '삶 그 자체가 욕망과 소비능력의 조정과정'임을 반복학습하고 체화하게 된다. 올해부터는 학교에서도 신용관리내용을 가르친다고 한다.몇가지 주문사항이 있다.이론위주 수업은 안된다. 신용카드가 무엇이며,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어떻게 사용해야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지를 배우고 실감해야 된다. 제대로 된 사용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 모의훈련도 첨가할 일이다. 즉 이론지식이 아니라 실용지식을 학습하게 만들자는 것이다.재미까지 있으면 교육효과는 배가된다. 신용문맹독해교육을 받은 개인은 이제 '불행 끝! 행복시작!'의 준비를 마친 셈이다.욕망을 절제하는 교육이 신용교육이기에,신용관리를 할수 있는 성인은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힘까지 갖추게 된다. 제약 속에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해가는 지혜를 익힌지라,삶의 본원적 어려움도 다룰 능력이 생긴다. 나아가 거시적 신용관리정책도 시행대상자가 합리적 소비능력을 갖췄을때,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lm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