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현안에서 경영계 입장을 대변해 온 한국경영자총협회 조남홍 부회장(68)이 지난 24일 고문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1994년 11월 부회장에 취임한 그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한 우리나라 노동운동 격변기에 노사협상 테이블을 지켜온 노사현장의 산증인이다. 합리적 노사문화를 강조하며 원칙과 법을 중시했던 그는 불법 과격 노동운동을 정면으로 비판해 노동계로부터 '조폭(趙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 전부회장은 재임기간중 노동권은 많이 신장됐지만 경영권은 아직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 노동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경총 부회장에 취임할 당시와 비교해볼 때 노사관계가 많이 개선된 편입니까. "94년 11월 노동의 '노'자도 모르면서 중책을 맡았었지요. 상식과 원칙으로 노사관계를 진일보시키기 위해 일하다 보니 노동계에서 '조폭'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졌네요. 경총 정기총회에서 외빈으로 참석한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축사를 하며 "이제 '조폭'은 가고 '싸움닭'(김영배 신임 부회장)이 왔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지요. 돌이켜보면 노동권은 그동안 공무원 노조와 복수 상급단체가 허용될 정도로 엄청나게 신장됐어요. 선진국 수준이지요. 하지만 경영권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 전임자의 월급을 왜 기업에서 줘야 합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요. "김영삼 정부 시절에 복수노조를 허용하자고 재계에서 처음 주장했다가 다른 경제단체는 물론 정부 일각에서도 '저 사람 불그스레한 것 아니야'라는 오해를 받았지요. 노조원에게 결사의 자유라는 노동권을 인정해주는 대신 사용자도 무노동 무임금의 권리를 쟁취하자는 취지로 당시 노동개혁위원회에서 말했었죠. 오는 2007년부터 한 사업장의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노조전임자 월급은 노조 회비에서 나가니까 10여년이 지나 제 주장이 실현되는 셈이죠." -노동계는 이번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제에 힘입어 국회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지난 97년 노동법 개정 때 '왜 노동계의 정치활동만 허용하느냐,경영계도 하게 해달라'고 했었지요. 경총은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의정활동을 평가해 반기업적인 의원들을 지목했는데 이런 평가가 해당자들이 반재벌 정치인이라는 호재로 활용되는 바람에 역효과를 봤지요. 안되겠다 싶어 2000년엔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전략을 바꿔 '친시장경제' 의원들인지 여부를 평가했는데 역시 약발이 먹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객관적인 입법활동 실적만 분석해 회원사에 알린다고 해요. 해석은 기업이 하는 것이죠." -여러 토론에 나가서 재계 입장을 대변하다 보면 반대편으로부터 반발은 없었습니까. "말도 마세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전화나 편지를 통해 들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한번은 90년대 말 현대자동차 파업이 일어났을 땐데 어떤 사람이 제 비서에게 지인의 이름을 도용해 전화를 걸어와서 받았는데 '당신 오늘 저녁에 무사히 집에 가지 못할 거다.차에 폭파장치를 했다.당신 같은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말했어요. 운전사를 시켜 승용차를 샅샅이 뒤졌는데 다행히 이상한 건 발견하지 못했어요. 집에는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 전화가 새벽에 하도 걸려와 한동안 집전화를 아예 끊어버린 적도 있어요." -그래도 노동운동이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폭력 행사는 확실히 줄고 있지요. 노동 이슈가 덜 전투적이고 논의지향적이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통해 대화나 타협을 하는 품성과 직업윤리 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역대 정권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난 87년 6·29 선언 이후 YS정권,DJ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노동권이 크게 커졌지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철학적 기조가 크게 지배했기 때문이죠. 현 정부는 선진형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로드맵을 만드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문제는 얼마나 제도화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노사관계는 언제쯤 선진형 합리주의로 발전될까요. "옛날에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지난 97년 경총 회장을 그만두면서 '앞으로 20년 걸린다'고 말했었지요. 제가 볼 때는 최소한 10년에서 길게는 20년쯤 뒤에야 가능한 얘기죠. 요새 협력적 노사관계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협력적'이라는 말은 다소 문제가 있지요. 공평하고 합리적인 노사관계라고 표현하는 게 맞아요.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조 전 부회장은 ILO(국제노동기구)에서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남은 ILO 이사 임기 2년 동안 대외활동을 지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총 고문으로 신임 회장단에 자문하면서 그동안 경험했던 노사개혁에 대한 얘기를 책으로 엮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