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8년 1.21 사태 당시 청와대에 진입하던북한 특수부대원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순직한 故 최규식 경무관의 미망인 유정화(71)씨는 5일 "젊은 경찰관들이 1.21 사태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유씨는 이날 '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최 경무관을 기리는 전쟁기념관 행사에참석, "애들이 병들고, 결혼할 때 남편의 빈자리가 가장 컸었다"며 홀로 지낸 36년세월을 회고했다. 새댁이었던 30대 중반 남편과 사별한 유씨는 이제 고희를 훌쩍 넘긴 백발의 할머니가 됐다. 유씨는 남편을 먼저 보냈다는 슬픔 보다 남겨진 4 남매와 시어머니를 혼자 부양해야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었다고 한다. 다행히 유씨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종합청사안에간이약국을 차릴 수 있게 배려했고 남편의 장례식때 국민들이 보내준 위로금을 쪼개쓰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든든한 후원자격이던 박 전대통령이 숨지자 약국문을 닫고 이 약국, 저 약국을 전전해야 했다. 남편은 사망 이후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추서됐지만 경찰근무 경력은 5년 밖에안돼 연금은 넉넉지 않았다. 그나마 장학재단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4남매의 학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게 위안이었다. 유씨는 경제적 어려움 보다 국민들 뇌리속에서 1.21 사태의 교훈이 잊혀져 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힘들었다며 "경찰청을 가끔 방문했는데 젊은 경찰들이 남편의 이름은 물론 사건 자체를 잘 모르더라"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유씨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1.21 사태의 가해자측인 김신조씨를 인간적으로이해하고 연락도 자주하며 지낸다고 한다. 유씨는 "김신조씨가 결혼한 뒤 홀로 계신 시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린다며 찾아와처음 대면했다"면서 " 처음에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 역시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군인이었다고 생각하니 이해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영화 '실미도'를 관람하지 않았다면서 "남편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흥행 위주로 만들어질까 반대,제작이 중단됐었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남편은 신혼여행 가서 혼자 책방에 들러 책을 볼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했으며 항상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고 최 경무관은 6.25 전쟁이 터져 연세대 신학과를 2년만에 중퇴했고 63년 경찰에 투신한뒤 부산경찰청 정보과장으로 일하면서 동아대 야간을 다니며 국제정치학을공부, 68년 1월 석사 학위까지 받고 연세대 박사 과정을 준비중이었다. 유씨는 "남편은 가끔 '경찰신분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한계가 많아 성직자가 됐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며 "김신조씨가 목회 활동을 하는 걸 보면 뭔가 인연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용산경찰서장 시절 재활원을 설립, 청소년들에게 직업교육을 실시했다"면서 "청소년들이 굉장히 따랐는데 국립묘지에 사과를 놓고 참배하는 애들을가끔 봤다"고 말했다. 유씨는 "매년 1월 21일 남편이 죽은 삼청동 현장에서 추모 행사가 치러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줄고 있고 기념사업회도 10년 정도 운영되다 흐지부지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kh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