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8일로 취임 100일째를 맞는다. 현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 파동의 격랑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그룹 사수와 재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으며, 이번 분쟁의 최대 고비가 될 KCC지분 5%룰 위반혐의에 대한 금융당국의 다음달 11일 결정을 기다리면서 조직을 가다듬고 있다. 양측의 다툼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하루빨리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벌가 며느리서 그룹 회장으로' = 현회장은 지난해 10월21일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전격 취임하면서 재벌가의 며느리, 남편을 잃은 아내에서 CEO(최고경영자)로 변신하며 경영 전면에 뛰어들었다. 현회장은 당시 "정회장과 현대그룹에 대한 주변의 사랑과 용기에 힘입어 그룹일을 맏기로 결심했다"며 "정상영 KCC 명예회장을 비롯, 현대가 어른들과 상의해 나가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그룹을 이끌어 갈 것"이라며 취임 일성을 밝혔었다. 그러나 현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현대그룹은 2000년 `왕자의 난'에 이은`시숙부와 며느리'간 경영권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으며 현회장은 다툼의 한 가운데에 선 핵심인물로 세간의 이목을 끌어왔다. 현회장은 그룹 경영권 사수 의사를 수차례 표명하며 정상영 명예회장의 그룹 M&A 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으며 지난해 말 일부 가신 청산을 단행한데 이어 전문경영인 영입 검토 방침 발표 및 상선 중심의 조직 재정비를 통해 본격적인 `포스트 MH' 친정체제를 다지고 있다. 취임 초기부터 `경영경험 부족'이 아킬레스의 건으로 현회장 뒤를 따라 다녔으나 지난 100일동안 어느정도의 안정과 여유를 되찾으며 `풍전등화'의 그룹을 지켜나가는 등 나름대로 경영인으로서의 변신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또한 이번 다툼이 집안싸움임을 감안,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지만 최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명예회장의 상속포기 종용을 비롯, 뒷얘기들을 털어냈고 "경영권을 끝까지 사수, 남편의 뒤를 이어 사업을 성공시킨 애경유지 장영신회장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 대혼란 = 현대그룹은 현회장의 취임으로 몽헌 회장 사망 이후 흩어졌던 전열을 가다듬는 듯 했으나 11월 초 정명예회장이 엘리베이터 주식을 대량으로 매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몽헌 회장 사망 직후인 8월 `범현대가' 9개 계열사를 동원, 외국인 매수세에 맞서 엘리베이터 지분 16.2%를 사들여 든든한 그룹 지킴이이자 현회장의 후원인으로떠올랐던 정명예회장은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위협하는 점령군으로 뒤바뀌게 됐다. KCC측이 11월 14일 절반에 이르는 정명예회장측의 우호지분 보유현황을 공개,그룹 접수를 공식선언하면서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은 정명예회장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 보였으나 현회장의 `불복'으로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현회장은 같은 달 17일 국민주 1천만주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한 국민기업화 방침을 발표하며 그룹 회장직 사수의지를 천명했으며 그동안 일부 분열조짐을 보였던 계열사 사장단도 현회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내부결속을 다지고 나섰다. 이후 현대사태는 정명예회장의 뮤추얼.사모펀드 매입분의 5%룰 위반 사실 공개,KCC측의 현대 유상증자 무효 가처분 신청 승소에 따른 현회장측의 국민기업화 `불발', 주주명부 폐쇄 직전 양측의 지분 추가 매입 등으로 한치앞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반복해왔다. 또 정명예회장측은 석명서 등을 통해 이번 분쟁 상대로 현회장의 어머니 김문희여사를 지목, 현대가-非현대가 구도를 강조하고 현회장측이 이를 조목조목 반박한데이어 KCC측이 이달들어 현대상선 분식회계 및 해외매각 추진 의혹을 폭로하는 등 양측의 싸움은 극심한 감정대립속에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기도 했다. 현회장측은 지난해 12월 26일 앞서 현대그룹 사장단 8명이 제출한 일괄사표에 대해 강명구 현대택배 전 회장 등 4명을 전격 경질, KCC를 중심으로 일각에서 제기돼 온 가신청산론의 부담을 털어냈고 그룹 정비에 바쁘게 움직였다. ◆현대그룹 앞날은 = 지난해 말 실시된 무상증자 후 현 지분현황은 현회장측 우호지분 30.03%, 정상영 명예회장.KCC측 36.89%, 범현대가 15.41%로 일단 KCC측이 승기를 잡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 11일 증선위에서 금융당국이 문제의 KCC지분 20.78%(뮤추얼 펀드7.87%+사모펀드 12.91%)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분쟁은 큰 전환점을맞게 된다. 일단 오는 3월 주총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범현대가와 소액주주의 표심을 잡기위한 양측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결정이 의결권 제한에 그칠경우 의결권 제한이 풀리는 5월 이후 임시주총을 통한 KCC측의 `재기'가 예상된다. 특히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불리한 처분을 받은 쪽은 불복, 법적 대응으로 맞설것으로 보여 이번 다툼은 수년에 이르는 장기전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정명예회장측은 그동안 현회장과의 `회동' 가능성을 열어왔으나 그 전제로 김문희씨 지분의 즉각적 증여를 요구하고 있고 이미 양측의 갈등이 갈때까지 간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만남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싸움이 오래갈수록 서로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는데다 대주주간 주도권 다툼 속에 소액주주의 피해만 커지고 기업 역시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없는 만큼 양측이 이른시일내에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명예회장과 현회장이 허심탄회하게 만나 앙금을 씻어내는 것이 `정공법'이겠지만 그 방법이 여의치 않다면 `장자'인 정몽구 회장 등 집안의 어른이 중재에 나서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미래를 가늠하기 힘든 현대사태의 핵심에 서 있는 현회장이 이번 분쟁을 딛고 현대그룹의 재도약을 일궈낼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기자 hankso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