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매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접하며 살아간다. 신문과 텔레비전은 전쟁과 학살, 기아를 담은 잔혹한 이미지를쉴새없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71)은 그의 저서 「타인의 고통」(이후 刊)을 통해 대량 복제된 이미지들이 어떻게 인간의 감수성을 파괴하는지 고발한다. 손택은 잔혹한 이미지들의 범람이 곧 타인의 고통에 대한 경각심과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미지 과잉의 사회는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크다. 사람들은 잔혹한 장면에 무뎌지고 그것을 단순히 '스펙터클'한 상품으로 소비해 버린다는 지적이다. 손택은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은 이미지라는 매개를 통해 자극의 원천이 되고 소비자들은 좀더 '신경을 거스르고, 소란을 불러일으키고,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장면을 원하게 된다. 전쟁터는 타인의 고통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무대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그 속에 갇힌 이들의 고통과는 별개로 "도저히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소식"이다.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은 사람들의 고통을 사물화시키면서, 적군의 잔혹함을 강조하고 전쟁 자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손택은 "사진 없는 전쟁,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전쟁 이미지를 통해서 본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참담함 사이에 얼마나 큰 거리가 있는지를 분석한다. 손택은 나아가 9.11 사건 직후 미국 사회에 불어닥친 반이성적 분위기와 '테러와의 전쟁'의 위험성을 꼬집는다. 책은 「문학은 자유이다」「현실의 전투, 공허한 은유」「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우리가 코소보에 와 있는 이유」등 손택의 최근 기고문 네 편도 함께 실었다. 이재원 옮김. 253쪽. 1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