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盛日 < 서강대 교수.경제학 > 19세기 영국 의회에서 있었던 일이라 한다. 급격한 물가상승을 놓고 의원들끼리 논란이 벌어지자 이를 지켜보던 한 의원이 동료에게 물었다. "도대체 물가는 왜 오르는거요?" 동료 의원이 답하기를 "수요와 공급의 법 때문이라오".그러자 이 의원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 법을 폐기해 버리면 될 것 아니오?" 자연법적 경제원리를 인간의 법률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무지를 풍자하는 일화이지만 아직 주위에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다. 최근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라 하여 노사정위원회에 제출된 이른바 로드맵이라는 것도 한 예이다.노사관계는 기업과 근로자의 경제활동에서 형성되는 관계이다.그런데 로드맵은 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것 같다. 이 로드맵 대로라면 경제활동은 급격히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출된 로드맵은 한마디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한껏 강화한 것이다. 예컨대 실업자도 상급단체 노조에 가입할수 있도록 했으며 노조전임자는 일정부분 급여를 회사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합법화했다. 또한 근로자의 이해와 직접 관계없는 사항에 대해서도 교섭하고 심지어 파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직권중재제도도 폐지해 필수공익사업장에서 파업할 기회를 더욱 넓혀놓았다. 그러는 한편 사적 조정제도 도입,노동위원회 인력 확충 등 밥그릇 챙기기도 확실하게 해 두었다. 비유하자면 축구선수 경험이 없는 규정위원들이 시합규칙을 바꿔 한쪽이 위험한 태클을 해도 괜찮도록 한 다음 부상자가 발생하면 자기들에게 와서 치료받도록 한 격이다. 반면에 기업의 대항권은 강화되지 않고 권리는 더욱 제약됐다. 공익사업에 대해 대체근로를 허용한다 했으나 신규채용 및 하도급에 국한됐고 가장 현실적 대안인 파견사용은 금지했다.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응수단인 손배·가압류는 노동조합 존속을 위해 제한하도록 했다. 기업은 망해도 노조는 존속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번에 발표된 로드맵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파업을 정당시하고 그 기회를 한껏 넓혀 놓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파업은 나쁜 것이며 억제해야 할 일이다. 노조에는 권리의 행사일지 몰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긴요하게 쓰여야할 생산자원이 놀게 되는 사회적 낭비이다. 그리고 공해처럼 제3자에게 피해를 주는 음의 외부성이 있다. 더욱이 최근 우리나라는 외신에 의해 '죽도록 파업하는 나라'로 평가될 정도로 급증하는 파업에 시달리고 있으며 파업으로 인한 손실일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기업체질이 극도로 허약해진 상황에서 가계소비에 의해 겨우 지탱해 왔다. 그러나 과도한 카드사용 등에 따라 가계소비도 힘을 잃고 허약해진 형편이다. 이제 다시 기업이 힘을 회복해 투자를 활성화해야 경제가 건강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금년만 해도 10%가 넘는 높은 임금인상 및 잦은 파업 등 독점노조의 폐해로 기업은 의욕을 잃고 있다. 이는 대기업에서 더 심각하다. 높은 임금과 고용경직성으로 대기업은 고용을 오히려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대기업의 20대 취업자수는 30% 이상 줄어들었다. 독점노조에 의한 내부자 이익 옹호가 청년실업의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권력의 강화는 젊은이의 일자리를 더욱 줄일 것이며 궁극적으로 기업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하고 전체 근로자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로드맵은 어차피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다.기업들은 벌써부터 반발이 대단하다.노동계는 좀더 유리한 결과를 위해 투쟁을 불사하는 태도를 보인다. 일부 노동법학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로드맵은 공익 일반의 호응을 얻기도 어렵다. 만일 정부가 혹시라도 총선용으로 로드맵을 이용하려 한다면 크게 실패할 것이다.로드맵이 노사갈등의 새로운 불쏘시개가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누구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로드맵 논의를 중지하기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기규칙 개정이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받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침묵의 시간이다.그리고 상식과 원칙에 맞는 자생적 노사관계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sina@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