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발표된 2004년 예산안은 올해에 비해 2.1% 증가하는 것으로 긴축예산의 성격이 강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긴축기조의 예산을 만들었다는 것은 선거 때마다 선심성 예산을 남발하던 그동안의 관례로 볼 때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여기서 우리는 통계의 함정에 주의해야 한다. 2.1%만 증가한다고 긴축으로 단정지어서는 곤란하다. 2.1% 증가의 기준인 일반회계는 정부의 재정활동 범위로는 가장 좁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실 22개의 특별회계와 45개의 기금역시 우리가 긴축이냐 팽창이냐를 논할 때 반드시 짚어 봐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특별회계와 기금까지 포괄하는 통합재정을 기준으로 재정운용을 평가해야 마땅하다. 이번 정부 발표에 통합재정규모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내년에도 통합재정수지상 흑자를 기록하게 되어 2000년 이후 연속 흑자가 지속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통합재정 또한 재정운용의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의 통합재정에는 국민연금의 보험료 수입이 흑자요인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년 적립되는 국민연금 수입이 본격적으로 연금 지급이 시작되는 2008년 이후 급속히 줄어들어 고갈될 것인데,이를 재정수지 흑자에 포함시켜서 재정상태를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올해만 해도 통합재정 흑자가 6조7천억원이라지만 국민연금 흑자 17조9천억원을 제외하면 11조2천억원 적자인 셈이다. 같은 기준으로 지난 5년을 돌이켜보더라도 흑자가 아니라 매년 적자였던 셈이다. 재정을 평가할 때는 나라 빚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가도 눈여겨 봐야 한다. 우리의 나라 빚 규모는 작년 말 기준으로 1백33조 6천억원에,GDP 대비 22%다. 이는 1997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또 공적자금과 같은 보증채무를 포함하게 되면 40% 정도로까지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예산을 볼 때 무엇을 보고,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지출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를 봐야 한다. 통합재정기준으로 우리의 자본지출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둘째, 각종 세금 인하 혹은 세금감면의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고 과학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세금만 깎아주면 투자와 소비가 늘 것이라는 단순논리는 우리 재정여건상 위험하다. 셋째,예산을 실제 집행할 때는 보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매년 상반기에는 경기부양한다고 재정 조기집행을 하지만 추경편성 결과 조기집행이 아닌 '만기집행'이 되는 사례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나라살림은 어떻게 꾸려나가는 것이 옳은가. 첫째로 예산사업과 기금사업들의 사전·사후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각종 사업들이 타당성이 있는지 그리고 당초 목표했던 대로 성과가 달성되는지를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에 국회에서 출범하는 '예산정책처'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둘째,중기재정계획을 기초로 매년 예산을 편성하고 평가해야 한다. 99년에 발표한 중기재정계획을 지금까지 예산심의에 활용하지도 않고,수정 보완하지도 않고 있다. 중기재정계획에 근거한 예산편성과 심의가 이루어진다면, 빈번한 추경편성도 억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획성 있는 재정운용도 가능해 진다. 셋째, 예산과 기금의 관계를 제대로 짚어봐서 서로 중복되는가를 철저히 점검해서 교통정리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 이는 우리 재정사업의 실효성을 높여주고 낭비요인을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확실하지 않은 경기부양 기능보다는 위기대처기능을 우리 재정이 갖추도록 해야 한다. 나라 빚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는 현재 재정건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일본처럼 매년 반복되는 재정적자, GDP 1백30%의 나라 빚,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의 굴레에 빠질 수도 있다. cban@skk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