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민주인사 한가위 고향방문'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양동민 부의장 등 5명이 20일 김대중 전대통령과 30년만에 화해의 만남을 갖는다.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는 19일 한통련 양동민 부의장 등 5명이 최병모 대표와 임종인 집행위원장과 함께 20일 오전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김 전 대통령을 면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추진위측은 "건강이 악화돼 거동이 불편한 DJ가 이들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으며 '미안하다, 꼭 보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통련은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정권에 의해 납치되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렸을 때 그를 죽음에서 구해낸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1980년 군사재판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이 단체와의 관련을 부인하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 단체에 대한 이적규정을 철회하지 않아 관련 인사들의 입국을 불허했던 적이 있어 이번 만남은 30년만에 한국땅에서 이뤄지는 화해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통련과 DJ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10월 유신정권 출범 당시 신병치료차 일본에 머물다 귀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김 전 대통령은 일본과 미국에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일본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동포들과 함께 한통련의 전신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를 결성, 초대의장으로 내정돼 있었다. 해외에서 DJ를 중심으로 반박정희 세력이 결집되는데 당황한 중앙정보부는 한민통의 결성식을 1주일 앞둔 19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사건을 강행했다. 김 전 대통령이 납치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마취약의 흔적과 혈흔 등을 발견한 한민통 회원들은 `김대중선생 구출대책위원회'를 결성, 납치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이루어졌다며 조직적으로 구명운동을 벌였다. 김 전 대통령은 납치된 지 6일 만에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왔고, 한민통은 8월15일 결성선언대회를 갖고 정식으로 출범했다. 당시 한민통의 김대중 구출운동은 세계 각 지역의 해외동포들과 국제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으며, 국제적인 반박정희 운동의 구심점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민통을 중심으로 국내외 민주화 운동 세력이 결집하자 박정희 정권은 1978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를 한민통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조작했고 이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한민통은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혔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 등 신군부는 김대중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으며, 이때 DJ를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만든 것은 그가 한민통의 초대 의장이라는 이유 때문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는 위기 상황에 이르자 한민통은 또 다시 김대중선생구출위원회를 재건하고 제2차 구명운동에 돌입해 김대중 구출을 위한 운동단체들이 일본의 주요도시는 물론, 범세계적으로 결성되는 계기를 됐다. 30년만에야 고국땅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만남에서 해묵은 오해와 감정들을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