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의 선구자 이동휘(李東輝) 선생(1873-1935)의 외손자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병마와 싸우며 외롭게 말년을 보내고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동휘 선생의 외손자이자, 임시정부에서법무부장을 지낸 오영선(吳永善) 선생의 아들인 오도영(吳道泳.79) 할아버지는 4년전 위암 수술을 받은 뒤 거동도 하지 못하고 자택(上海市 普陀區 宜川三村 43-13)침상에서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특히 조국독립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독립유공자의 자손이지만 이국 땅에서태어난 탓에 한국의 호적에 등재돼있지 않아 그마나 한국정부의 포상대상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주 상해한국총영사관은 지난 4월 국가보훈처에 오도영 할아버지가 이동휘 선생의 외손자이자 오영선 선생의 아들이라는 점을 들어 포상 신청을 했으나 재외동포법에 의해 재중(在中) 조선족으로 분류되기 있어 포상대상이 아니라는 답변만 들었다. 해방후에도 50년을 넘게 중국땅에서 생활해온 오도영 할아버지는 아직도 한국말을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자신의 외손자인 전용흠(錢勇흠)이 올6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게 되자 한국대학 진학을 추진했었다. 자랑스런 이동휘 선생의 후손으로 조국에서 `한국말로' 공부하는 모습을 생의 마지막 `희망'으로 삼았으나 이 마저도 무산됐다. 입학을 타진했던 서울대에서 `독립유공자 자녀라고 해서 특별히 입학을 허가할방도가 없다'는 답변이 왔다. 다만 일반 외국인처럼 서류전형은 할 수 있다는 회신속에 결국 외손자의 한국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김창남(金彰南) 영사는 9일 "만일 포상금이라도 받게됐다면 위암으로 고생하며어렵게 살고 계신 할아버지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라면서 "법 규정상 어렵게 됐지만 조국을 위해 고생한 유공자에게 응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영사관측은 추석을 맞아 10일 오도영 할아버지를 병문안하고 '한가위 선물'을전달한다. 김 영사는 "이동휘 선생 가문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오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독지가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86-21) 6208-2373. 이동휘 선생은 함남 단천 출신으로 1906년 대한자강회 설립에 간여했고, 1907년군대 해산 무렵 강화도에서 의병항쟁을 했다. 1910년 만주로 망명해 철혈광복단원으로 활약했고, 1918년엔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성했다. 1919년 3.1운동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임명돼 활동하다 1921년 임정에서 이탈, 1921년 고려공산당(상해파)을 결성했다. 사회주의 계열로 분류돼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못하다 1995년 김영삼(金泳三) 정부시절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복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또 그의 딸 이의순(李義橓. 오도영 할아버지 모친)도 상하이 한국부녀회장을 지내는 등 독립유공이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1995년)을, 사위 오영선은 건국훈장국민장(1990년)을 받았으며 지난 2000년 9월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됐다. (상하이=연합뉴스) 이우탁특파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