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는 인간의 가장 큰 본능중 하나로 여겨진다. 90년대초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몰래 카메라'코너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증거다.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드러나지 않은 뒷모습을 몰래 찍어 내보낸 이 프로그램은 인권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타 방송사의 유사프로그램을 양산시킬 만큼 인기를 모았다. 그런가하면 96년 11월부터 97년 5월까지 방영된 '이경규가 간다' 교통시리즈의 연출자와 진행자 이씨는 국민의 교통안전 질서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한 공로로 정부의 표창장을 받았다. 몰카의 사회 감시 기능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미국과 일본의 TV프로그램에서 몰카가 처음 등장한 것도 사회문제 고발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몰래카메라가 일반에 알려지면서 음성적이고 불법적으로 악용되는 사례 또한 늘어났다. 백화점에서 도난방지를 빌미로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여성단체로부터 혼쭐이 났는가 하면,비디오방이나 여관에 설치한 뒤 촬영장면을 담은 테이프를 시중에 유통시키거나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올려놓고 파는 일까지 벌어졌다.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행적이 몰카로 찍혀 TV에 공개된 일은 우리 사회 그 누구도 몰카의 렌즈에서 자유로울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온몸을 쭈볏거리게 만든다. 이유야 어찌 됐건 몰카의 만연은 불신과 의혹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끔찍한 단면에 다름 아니다. 질서를 위한 통제라는 이름 아래 합법화되기도 하지만 사전 혹은 사후에 동의를 얻지 않는 한 몰카 촬영은 대상과 내용이 무엇이든 불법이다. 이번 양 실장 비디오 사건의 진행과정은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하고 있다. 몰카 촬영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사진에 드러났다고 하는 만큼 조만간 누가 왜 찍었는지 밝혀질지 모른다. 원인과 연루자를 알아내는 일은 중요하지만,문제는 이런 식의 촬영과 폭로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얼마나 이뤄지고 또 앞으로 어떻게 계속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진정 '자고 있건 깨어 있건 무엇을 하건, 보이지 않는 눈길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