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소장파 장교들이 결행한 필리핀 군사반란이 반란세력의 마닐라 도심 주상복합건물 점거 20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부군과 대치했던 반란세력이 주상복합건물에서 자진 철수, 원대복귀함에 따라 유혈사태 없이 마무리됐다. 필리핀에서 일부 군인들이 민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무장반란에 나선 것은지난 1989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유혈사태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된 점은 다행이라고 환영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군율'에 따라 조사할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이번 쿠데타 음모와 관련된민간인 역시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한 반란'을 주도했던 앤터니오 트릴레인즈 해군 대위는 자진 귀대키로 결정한 데 대해 "국민을 위해 일어섰는데 국민이 목숨을 잃게 되면 모순이 아니냐"고반문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냉담한 여론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사태 전개 = 필리핀 군 정보당국은 소장파 장교 20여명이 근무여건 등에 불만을 품고 지난 25일 사병 40여명을 대동한 채 근무지를 이탈, 마닐라로 이동하자 적색 경계령을 내렸으며 26일 오전에는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육군과해군의 엘리트 장교 20명이 무장한 채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발표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 이들을 쿠데타 기도 세력으로 규정하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일부 젊은 군인들의 쿠데타 음모가 드러났다"며검거령을 발동했다. 하지만 대통령 담화가 있은 뒤 몇 시간 지나지 않은 27일 새벽 3시30분(한국시간 새벽 4시30분)께 마닐라 금융중심가의 글로리에타 주상복합건물을 기습 점거하고출입문 등에 부비트랩과 폭발물을 설치했다. 글로리에타 주상복합건물은 마닐라 최대 쇼핑몰중 하나인 아얄라 쇼핑센터와 사무실, 아파트로 이뤄졌고 각국 외교관이나 기업인들이 입주하고 있는 곳으로 루스피어스 필리핀 주재 호주 대사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한대 억류됐다가 풀려났다. ◆요구사항 = 반란세력은 건물 점거 직후 성명을 발표, 군 고위층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등 이슬람 반군에 무기를 밀매하고 있고 미국의 대(對)테러 지원금을 받기 위해 폭발사건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아로요 대통령이 권력유지를 위해 내달 마닐라에서 자작 테러사건을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고아로요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앤터니오 트릴레인즈 해군 대위는 "우리는 악한이 아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대응 = 필리핀 정부는 해군과 육군 전투부대원을 투입, 글로리에타 주상복합건물 주변을 포위하고 반란세력과 대치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반란세력에 대해 27일 오후 5시까지 해산하라는 최후 통첩을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무력 진압하겠다고 경고한 뒤 이를 오후 7시까지 연장했다. 아로요 대통령의 최후통첩시한 연장 직후인 이날 오후 5시25분(한국시간 오후 6시25분)부터 정부와 반란세력 대표간 협상이 시작됐으며 마침내 평화롭게 사태가 매듭지어졌다. 이에 앞서 나르시소 아바야 참모총장은 말라카냥궁에서 성명을 내고 "군부는 변함없이 군 최고통수권자이자 합헌적이고 민주적인 아로요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칠것"이라고 맹세했다. 군부 소식통들은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과 판필로 락슨, 그레고리오 호나산 상원의원, 후안 론스 엘릴레 전 상원의원이 (반란의) 배후에 있다"고 의심했다. ◆반란군의 정체 = 반란을 결행한 젊은 장교들은 필리핀 군사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군인으로 최고 계급은 대위이며 최연장자는 32세로 알려졌다. 아바야 참모총장은 "이들은 모두 지난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에 필리핀군사학교(PMA)를 졸업한 장교"라며 "이들은 완전 무장해 정부군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일부는 작년 미군과 합동으로 훈련을 받았던 신속대응군 출신으로 반란 참여장교들의 연령대는 30세 전후고 2명은 대대장급"이라고 전했다. 트릴레인즈 대위는 "자진해서 귀대키로 한 결정은 우리를 진압하기 위해 여기에출동한 사병들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며 "국민을 위해 일어섰는데 국민이 목숨을 잃는다면 아이러니가 아니냐"고 원대복귀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홍콩=연합뉴스) 권영석 특파원 yskwon@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