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천정부지의 인플레에 경제가 휘청거려온 중남미에도 마침내 디플레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 인터넷판이 11일 보도했다. 저널은 멕시코, 아르헨티나 및 칠레가 지난달 물가가 모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페루와 역내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 역시 유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남미의 경우 디플레가 다른 지역에 비해 볼 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면서 역내 금리도 미국과 유로권 등에 비해 볼 때 크게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유사시 통화 정책으로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멕시코 당국은 9일 5월의 소비자 물가가 전달에 비해 0.3% 하락했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도 지난주 같은 달의 물가가 한달 전에 비해 각각 0.4% 떨어졌다고 집계했다. 페루도 곧 5월 물가 지수를 발표할 예정인데 지난달의 경우 0.004% 줄어든 바 있다. 브라질은 최근까지만 해도 물가가 두자릿수 증가를 보이다가 도매 기준으로 지난 2개월 연속 하락한 바 있다. 5월의 소비자 물가는 전달에 비해 0.6% 상승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지난 11개월 사이 가장 작은 상승폭이다. 전문가들은 중남미의 디플레 조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이것이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유가 하락과 역내 통화의 대달러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한데 크게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남미 통화 가치는 특히 지난해말과 올해초 급락해 물가 상승을 부추긴 바 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중남미의 디플레가 설사 부각된다고 해도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내다본다.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중남미 경제분석가 존 윌리엄슨은 저널에 "중남미의 경우 디플레를 `물가 안정'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다"면서 따라서 "(일단) 긍정적인 조짐으로 봐도 좋다"고 말했다. 저널은 중남미의 경우 역사적으로 디플레보다는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높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뉴욕 소재 모건 스탠리의 중남미경제 책임자 그레이 뉴먼은 저널에 "지난주 리우데자네이루를 갔을 때 택시 승객들이 여전히 현금보다는 수표로 요금을 내는 것을 봤다"면서 "브라질 사람들이 인플레가 무려 4천%를 넘었던 지난 94년의 악몽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멕시코와 브라질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물가가 떨어지는 것을 선진권이 걱정하는 디플레와 연계시키기보다는 인플레가 둔화되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제시한다. 아르헨티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널은 중남미에서 설사 디플레가 본격화되더라도 중앙은행들이 통화 정책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브라질의 경우 기본 금리인 셀릭 이자율이 26.5%에 달한다. 미국의 연방기금금리가 1.25%인데 비하면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도 중남미 경제 전망이 상대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록 올해는 평균 1.5% 성장에 그칠 것이나 내년에는 3.5-4.0% 수준으로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만큼 성장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