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jpark@kgsm.kaist.ac.kr >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의 '돈의 장난'이라는 저서에는 태평양 캐롤라인 군도의 얩(Yap) 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섬에서는 돌 화폐를 사용한다. 페이라는 단위로 통용되는 돌 화폐는 각기 다른 직경의 크고 단단하며 두꺼운 돌 바퀴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큰 페이 값의 무거운 돌을 거래할 때 새 주인은 그 돌이 자기 것이라는 인정을 받을 뿐 원래 주인 집안에 그대로 놓아 둔다는 것이다. 심지어 먼 선조가 큰 돌의 페이를 배에 실어 나르다가 폭풍우로 바다에 빠졌을 경우에도 화폐 가치를 재산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순진하고 바보 같은 얩 섬의 이야기는 실은 현대에도 유용하다. 우리들 중 현금을 집에 보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은행계좌에 기입된 숫자와 주식이라는 종이 조각에 적혀있는 재산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은행에 맡겨 놓은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지불하기 위해 계좌를 이체하는 것은 '가치인정'을 교환하는 것이다. 1933년 프랑스 은행은 뉴욕의 연방준비은행에 맡겨둔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 별도 계정(서랍)에 보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것이 금융공황을 야기한 한 원인이 되었는데 이는 3천마일 떨어진 지하 금고 속 서랍에 붙은 금액표시가 미국 통화의 가치를 약화시킨다고 믿은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말 많던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사실상 끝났다. 전쟁 동맹국이나 반대국들은 이제 전후 복구를 통한 실리 챙기기에 바쁘다. 이 와중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담 후세인의 엄청난 재산이다. 미군은 대통령궁 지하의 상자 속에서 현금 6억5천6백만달러, 인근 마을에서 6억5천만달러, 바그다드의 한 은행 금고에서 10억달러어치의 금을 찾아 냈다. 전언에 따르면 후세인의 재산은 이밖에도 걸프전 이후 동결된 자산 17억달러, 오스트리아에 은닉된 자산 12억달러, 그리고 스위스은행 등 해외에 66억달러는 더 은닉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엄청난 재산의 대부분이 쉽게 발견되는 것은 바로 먼 거리에서 '가치인정'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많던 재산도 후세인에게는 한낱 디지털 부호인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돈은 사람들의 인정이고 믿음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특히 말썽 많았던 후세인이지만 그는 우리에게 '공수래 공수거'의 철학과 함께 가지고 있을 때 더 뜻 깊게 써야 한다는 돈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