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는 단일 시장으로서 '동대문 시장'이 없다. 종로 5가 광장 시장에서부터 창신동 문구 거리까지 1.3km. 청계로 좌우, 안쪽 골목, 흥인문로 좌우에 분포하는 약 30여개 상가, 2만 7천여 점포를 통칭한 시장이 '동대문 시장'이다. 광장시장, 평화시장, 중부시장, 방산시장, 세운상가, 동대문 종합시장 등이 전부 동대문 시장이다.이곳은 언제부터 시장이 형성된 것일까? 임진왜란 때 상시군으로 설치된 훈련도감 군인에게 지급하는 면포의 보급량이 전쟁이 끝나자 예전과 같이 지급되지 않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군인들은 지급받은 면포를 가공해 섬유 상품, 옷에 필요한 액세서리 같은 것을 만들어 팔았다. 차츰 성문 밖에서 생산하는 야채들도 팔기 시작하면서 조선 후기 이현시장, 배우개(배오개)가 형성되었다.이곳에 1904년에 광장시장이 형성되었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모든 것이 초토화되었다. 지형으로는 다소 평평한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계천 변 주인 없는 땅은 옹색하지만 판잣집을 지어 놓으면 그나마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북에서 무일푼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은 천막을 치고 물물교환을 하기 시작했다. 필요 없는 것을 내다 팔고, 필요한 것을 바꾸며 살다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 구호물자나 외래품, 수공품 거래로 활기를 찾게 되었다.청계천 변에 점포 겸용의 판잣집에서 한두 대의 미싱으로 옷을 만들었다. 미군복, 담요, 구호 물자 등을 염색, 탈색해 몸뻬와 잠바를 만들면서 형성된 것이 평화시장의 시초이다. 북에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한 상인들은 시장 이름에도 '평화'를 붙여 '평화시장'이라 했다.박수근이 이곳에 정착
올여름 국립극장에서 두가지 버전의 '맥베스'가 연달아 공연한다. 6월에는 수어와 판소리로 노래하는 '맥베스'가 관객을 만난다. 7월에 막을 올리는 대극장 버전은 황정민, 송일국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자신이 국왕이 된다는 예언을 듣고 왕을 살해하면서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다. 타락하고 몰락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경고하는 작품이다.◇수어와 판소리로 노래하는 파격 '맥베스'다음 달 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맥베스'는 과감한 각색이 돋보인다.배경은 고대 스코틀랜드에서 현대 대한민국으로 옮겨왔다. 등장인물들은 대대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집안으로 바꿨다. 한국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현대인의 잔혹함을 그리는 작품이다. 백색 타일로 뒤덮은 무대에 철제 테이블과 벤치를 놓아 차갑고 잔혹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꾸몄다.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에도 변주를 줬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수어와 판소리로 전한다. 원작 속 주요 독백을 16개의 장면으로 나눴다. 농인 배우들이 수어로 연기하면 소리꾼들이 음악과 해설을 더하는 방식이다.무대에는 6명의 농인 배우와 4명의 소리꾼이 오른다. 원작 속 남성 역할을 모두 여성 배우가 연기한다. 유일한 남성 농인 배우인 우지양은 무당역을 맡아 드랙퀸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공연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6월16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황정민, 송일국, 김소진…스타들이 연기하는 대극장 '맥베스'7월에는 6월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맥베스가 막을 올린다. 이
지금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여느 때보다 한국 미술의 열기로 뜨겁다. 공식 행사장 말고도 도시 곳곳 병행전시로 열리는 한국 작가 개인전만 4개. 한국 관련 전시를 합치면 10개가 넘는다. 역대 최대 규모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그리고 숯의 화가 이배의 개인전이다. 이들이 각자 나고 자란 고향 경북 울진과 청도의 정취가 이탈리아에서 그 모습을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났다. 세상과 단절한 채 바라본 산…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어떤 예술가는 죽어서야 세상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유영국(1916~2002)도 그중 하나다. 단풍빛으로 물들어가는 산, 청록으로 일렁이는 물결…. 그의 회화 29점과 석판화 11점 등이 4월 17일 베네치아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에 걸렸다. 20세기 최고의 시인 릴케가 가장 사랑한 미술관으로도 알려진 이곳에 유영국 작가의 첫 유럽 개인전이 우뚝 선 것이다.“선친께선 키가 아주 큰 미남이었어요. 쉬는 날이면 탱고를 즐겨 추셨죠. 생전 이탈리아를 찾으셨다면 좋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아쉽게 그러진 못하셨습니다.” (유진 유영국문화재단 이사장)유영국의 작품 세계가 본격적으로 연구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2016년 유영국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작품이 해외 무대에 걸린 것도 지난해 뉴욕 페이스갤러리 전시부터였다. 색채의 미학과 기하학적 형태를 극단으로 끌고 간 그에겐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 ‘최초의 추상화가’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미술계에선 “색의 깊이와 형태의 정신성이 마크 로스코, 몬드리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