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NHS(National Health Service) 라는 공공의료 제도를 운용하면서 한때 ‘의료 천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영국 국민과 거주자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NHS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이면서, 동시에 지역 간 건강 격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NHS는 자금 부족, 인력 부족, 노후한 인프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 NHS 파산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가 하면, 수술을 위해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면서 국민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최근 한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NHS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감동적이고 유머러스하게 쓰였는데, 잘못된 의료 체계에 대해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일하기 위해 당신도 미칠 필요는 없습니다(You Don't Have to Be Mad to Work Here)>. 책의 제목부터 재치가 넘친다. 에든버러 축제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수상 경력도 있는 벤지 워터하우스(Benji Waterhouse)는 NHS 정신과 전문의로서 의료 최전선에서 좌충우돌하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의학계에서 가장 신비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분야인 정신과에서 생겨나는 흥미진진한 사례가 이어진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왜 정신과 의사가 되려고 할까? 엉망진창으로 복잡하게 얽힌 삶에 대한 해결책이 정말 의학 교과서 안에 있을까? 의료진, 병상, 치료법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이 어떻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책에는 ‘청진기를 든 사회복지사’라는 오명을 듣는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고단한 삶이 그려진다. 자신이 예수라고 생각하며 물 위를 걷다가 수영장에 빠져 익사할뻔한 환자, 영국의 유명 가수와 결혼하기 위해 신부 드레스를 입고 스스로 병원을 찾아온 환자, 자신이 입원한 정신과 병동이 TV 세트장이라고 생각하는 환자,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가 있다고 믿는 조현병 환자,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을 숨기는 우울증 환자 등 책에는 정신과 병동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정신 질환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게 확산해있다. “통계적으로 영국인 4명 가운데 1명은 어느 시점에서든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합니다. 정신 질환은 국가 전체 질병 부담의 28%를 차지하지만, NHS 자금의 13%만 지원받고 있습니다. 정신 건강 지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정신 병상 수는 1988년 6만7000개에서 2019년 1만8000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조현병 환자는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파라세타몰의 개수를 제한하면 자살을 줄일 수 있다는 건강 상식은 잘못됐다. 책은 정신 건강에 대한 올바른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저자가 가장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정신 건강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연구나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영국 의료 체제의 허점’이다.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회고록을 통해 독자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정신 건강의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구체적으로 깨닫고 있다.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7월 조기 총선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여론조사에서 집권 보수당이 야당인 노동당에 2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던진 정치적 승부수다. 14년만에 정권을 되찾아오려는 노동당과 막판 ‘대역전극’을 노리는 보수당 간 한판 승부 결과에 따라 영국의 대(對)유럽연합(EU) 정책 등 외교 노선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지방선거 참패 직후 조기총선 '승부수'수낙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회견을 갖고 “7월 4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빗속에서 우산 없이 연설에 나선 수낙 총리는 “영국이 미래를 선택할 순간이 왔다”며 “오늘 찰스 3세 국왕과 만나 다음 총선을 위해 5월 30일 의회를 해산할 것을 요청했고 찰스 3세가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당초 영국 총선은 10~11월에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조기 총선 카드는 수낙 총리에게는 ‘정치적인 도박’이나 다름없다. 그가 이끄는 보수당은 현재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에 2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지난 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은 시장 선거가 치러진 11개 지역 중 단 한 곳만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지방의회 의석은 절반 가까이 잃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은 총리가 국왕의 재가를 받아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를 수 있다. 법률상 차기 총선은 내년 1월28일 전까지만 치르면 된다. 불리한 정치적 여건에도 조기 총선을 결정한 배경엔 ‘늦을수록 불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수낙 총리는 인플레이션 하락과 경제성장률 회복 등 최근의 좋은 경제 소식들이 여론조사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기반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며 “물가 상승 우려가 여전한 만큼 영국중앙은행(BOE)이 빨리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작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가능성이 없는 현재로선 만큼 수낙 총리 입장에서 기다려서 딱히 득이 될 게 없다는 설명이다. FT에 따르면 보수당 의원들은 “수낙 총리와 제레미 헌트 재무장관은 연말에 감세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수낙 내각은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내세워왔다. 노동당, 14년만에 정권 되찾을까관건은 보수당 내 반발이다. FT에 따르면 보수당 출신의 한 전직 장관은 “이 결정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고, 한 현역 의원은 “이제는 체념했다”며 수낙 총리 결정을 비판했다. 수낙 총리의 리더십은 이미 많은 내상을 입은 상태다. 지방선거 참패 직후 보수당 하원의원 두 명이 탈당해 노동당에 들어갔고, 수낙 총리의 대표 정책으로 지난달 하원에서 통과된 흡연 규제 법안의 경우 보수당 의원 57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내각에서도 케미 베이드녹 산업부 장관과 과학혁신기술부·균형개발주택부 부장관도 반대표를 던졌다. 다음달로 예정된 난민 르완다 이송 정책에 대해서도 당내 반란이 극심하다.반면 노동당은 14년만에 집권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다. 노동당이 가장 최근에 집권한 건 1997년부터 2010년까지다. ‘제3의길’로 대표되는 13년 집권기 당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고든 브라운 전 총리를 배출했지만 2010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패해 계속해서 보수당에 뒤졌다. 보수당은 14년 째 집권 중이지만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4번 총리가 바뀌었다. 만일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게 되면 8년 새 6명의 총리가 탄생하는 것으로 영국에서 이처럼 잦은 총리 교체는 1830년대 이후 처음이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지난 16일 6대 총선 공약을 발표하며 이미 선거전에 들어간 상황이다. 수낙 총리 기자회견 직후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사전 녹화 영상을 올리고 “보수당 집권 14년 동안 물가는 치솟고 치안은 위험해졌으며 공공 서비스에 위기가 왔다”고 수낙 내각을 비판했다. 이어 “혼란을 멈추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재건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7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경우 영국의 외교 노선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노동당은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시 영국산 무기나 부품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대EU 정책의 변화도 예상된다. 실제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영국에 18~30세 청년들의 이동장벽을 완화하는 협상을 제안했지만 수낙 내각은 이 제안이 브렉시트를 무력화하는 조치나 다름없다며 거절했다. 노동당도 공식적으로는 협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노동당 한 고위 관계자는 FT에 “당이 총선을 앞두고 자유 이동에 관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강하게 반응했다”며 “당이 실제로는 공식 입장보다 협상에 더 열려있다”고 밝히기도 했다.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리튬티탄산화물(LTO) 배터리 개발 ·생산 기업인 그리너리가 영국 정부의 R&D 조직인 UKRI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영국 내에서 LTO 배터리 셀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증가하고 있는 영국 내 배터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50만 파운도 규모의 패러데이 배터리 펀드를 조성했다. 그리너지는 이번 자금 지원 대상에 포함돼 영국 코벤트리에 위치해 있는 UKBIC에서 오는 7월부터 LTO 셀 시험 생산에 착수한다. 그리너지 관계자는 "영국 정부는 이번 자금 지원을 통해 그리너지의 LTO 배터리 기술을 영국 내에 유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너지는 산업용 및 가정용 ESS 사업뿐만 아니라 철도, 선박, 방산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매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방성용 그리너지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는 넷 제로 달성을 위한 한 걸음"이라며 "패러데이 배터리 기금의 지원을 계기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솔루션 분야의 선도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