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奎澤 < 중앙대 교수·한국채권연구원 원장 > 최근 이라크전쟁과 북한 핵문제로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외화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 또 SK글로벌 분식회계,카드사의 유동성 문제,고유가와 불확실성 증대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기업의 신용위험이 커져 신용경색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듯 내우외환이 겹친 상황에서 외화조달과 기업 자금조달이란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정책수단은 무엇일까. 기업의 자금조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 외환위기를 극복한 과정에서 사용한 자산유동화 방법이 다시 이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우사태 이후 회사채 만기 집중으로 야기된 신용경색 문제를 프라이머리CBO 발행이라는 자산유동화를 통해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 과정에서 신용보증기금 또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은 신용 보완을 통해 자산 유동화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자산유동화 사업을 도입해 신용경색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국내 또는 해외에서 채권발행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방법이 신용경색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수단이라는 점 때문에 세계은행 등도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국내유동화 방법만으로 신용카드회사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신용카드회사가 갖고 있는 자산을 유동화해 조달한 자금으로 카드채를 상환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이 방법은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이미 카드산업에 대한 포지션이 커 카드 유동화채권에 대한 추가 투자를 꺼리기 때문에 적용하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 카드 유동화채권을 적절한 지급보증을 받아 외국에 매각하는 국제유동화를 할 수 있으면 외자도 조달하고 카드회사의 유동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국제유동화를 촉진하기 위해 재정경제부는 4월3일 APEC 회의에서 역내 채권활성화를 위한 한국 제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본 제안의 주요 내용은 기존의 신용보증기구를 이용하거나 지역 신용보증기구를 설립하고,자산유동화 방법을 활용해 아시아지역의 저축을 아시아지역에 환류시키는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재경부는 지난 2월 '아세안+3' 재무장관 실무자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제안해 참가국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국제유동화방법이 활성화되면 외화조달과 기업 자금조달이란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가령 우리나라나 자금이 필요한 아시아 국가들이 각국의 중소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모아 자금이 풍부한 국가에서 자산 유동화를 통해 안전한 선순위채권을 발행하고,그 채권에 대해 잘 알려진 지급보증기관이 신용보완을 하면 자금공여국 채권투자자는 안심하고 선순위채권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자금공여국의 저축이 채권시장을 통해 자금수입국에 환류되고,그 결제과정을 통해 자금수입국의 외자조달은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아시아 각국은 역내 지급보증기관 설립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카드회사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국제증권화 방안이 실현되면 아시아 각국의 금융위기 대처능력도 높아질 것이다. 이같은 방안은 우리나라 채권시장 발전 경험을 아시아 각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만일 한국의 제안에 따라 아시아에서 자산유동화가 활성화되면 우리나라 증권회사 신용보증기관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금융서비스를 수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 지역신용보증기구를 한국에 유치할 수 있으면 우리나라가 아시아 채권시장의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나라가 과거 규제완화 중심의 소극적인 전략에서 탈피,금융산업을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산업으로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경험 자체가 수출이 가능한 상품이라는 인식이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슬기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금융 노하우 중에서 국제환경에 적합한 전략적인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면 금융업도 제조업처럼 경쟁력을 구비한 수출산업이 될 수 있고,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